-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대사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부유한 박 사장(이선균)과 연교(조여정)의 저택에서 영어 과외를 할 기회를 얻은 기우는 영화 초반부터 양쪽 집을 오가느라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캐릭터 특유의 화법이 잘 표현된 시나리오였다. 인물이 어느 공간에 있는지, 어떤 이와 대화를 나누는지에 따라 화술이 달라진다. 기우는 기택(송강호)과 충숙(장혜진)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가족 전원이 백수지만, 사실 별로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아이다. 그런데 부자 세계에 들어가면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안타까운 환경에서 계속 안타까움을 잦아내는 캐릭터라, 어떤 관객에게는 <거인>(2014)에서 내가 연기한 영재와 비슷하게 다가올지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친구를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싶지 않을까.
-인물의 클로즈업 촬영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2.35:1로 여러 인물을 한번에 담아내는 형식도 연기에 영향을 미쳤을 테고.
=예전에는 내가 눈이 작으니까 어떻게 해야 클로즈업컷에서 감정을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더 분명하게, 가령 확실히 눈물을 흘리는 식으로 연기했다. 지금은 그런 식으로 연기에 접근하지 않는다. 어떻게 더 몰입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우가 연기한 것을 담아내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카메라의 역할인데, 2.35:1로 찍은 <기생충>은 그 문의 크기가 훨씬 커졌다. 예전에는 그냥 걸어서 들어갈 수 있었다면, 지금은 춤을 추며 들어갈 수 있다. 예전에는 앵글 밖에서 준비하다가 앵글 안에 들어온 후 집중해서 연기했다면, <기생충>은 준비하는 과정까지도 앵글에 걸린다. 연기 호흡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상황에 더 몰입하게 된다. 또 카메라의 동선에 있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할 수 있는 현장이었는데, 아마 영화를 보면 깜짝 놀라실거다. (웃음)
-<옥자> 최고의 신스틸러로, 1종 면허는 있지만 4대 보험은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김군을 연기한 데 이어 <기생충>까지 봉준호 감독과 함께하게 됐다. 천만 관객을 모은 <부산행> 같은 장르영화도 필모그래피에 있다. 일찌감치 충무로에서 자리 잡은 젊은 배우가 됐는데, 자신이 가진 강점이 무엇이라고 보나. 과거 인터뷰에서는 ‘평범함’을 주로 언급했던데.
=먼저, 내가 잘생겼다면 절대 <기생충>에 캐스팅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 <호구의 사랑>을 제외하면 드라마에서 주연을 해본 적이 없다. 대부분 주인공 옆에서 보조하며 그들의 말을 잘 듣는 조연 캐릭터를 맡았고, 덕분에 다양한 리액션 연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내가 가진 평범한 얼굴로 이런저런 리액션을 해내면, 여러 인물과 다양한 케미스트리를 만들 수 있다.
-올해 서른살이 됐다.
=운이 좋게도 20대 때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 20대 초·중반의 최우식에게 빌려온 모습으로 할 수 있는 연기는 다 했다. 솔직히 20대 후반은 쌓아둔 것 없이 지나갔다. 앞으로의 나는 30대의 최우식에 뿌리를 두고 연기를 해야 할 텐데, 아직 가진 게 없는 것 같다. 그게 요즘 가장 큰 고민이다. 하지만 너무 영광스러운 <기생충>이란 작품과 또래 형들과 함께하며 좋은 시너지를 받은 <사냥의 시간>을 촬영하면서 20대를 마무리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도 크다. 덕분에 아주 좋은 컨디션으로 30대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