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중 보림극장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전쟁 중 교통부가 있던 자리라 하여 ‘교통부’로 불리기도 했던 그 교통부 사거리의 랜드마크였다. 1968년 신축 개관한 이래 곽경택 감독의 <친구>에서 극장 다찌마리 신이 촬영되기도 했던 삼일극장, 삼성극장과 함께 남포동, 서면과 더불어 부산 극장문화를 이끌었다. 영화뿐만 아니라 한때 조용필, 나훈아 등 가수들의 대형 공연이 열리기도 했으니, ‘시민회관’ 같은 곳이 생기기 전의 부산을 대표하는 복합대형문화공간이었던 셈이다. 당시 부산의 신발산업을 이끌던 ‘타이거’ 공장 노동자들을 비롯해 주변의 젊은 소비자들이 극장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공장들이 차례로 문을 닫으며 상권이 죽으면서 어느덧 변두리 동시상영관이 돼버린 것이다. 이후 2006년에는 삼일극장, 2011년에는 삼성극장이 먼저 사라졌었다.
마침 다음주 창간 23주년 기념호 특집을 준비하며, 동료 기자들과 옛날 영화 얘기를 한참 나누던 중 접한 소식에 괜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야기를 꺼냈던 영화 리스트의 상당수가 보림극장에서 본 것들이었다. 아마 <E.T.>도 보기 전에,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극장 관람 영화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림사 영화였을 터다. 웃통을 벗은 소림사 고수들이 행과 열을 맞춰 일제히 규격화된 액션을 펼치던 이미지가 지금도 선명하다.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그것이 실존 인물 방세옥에 관한 영화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영화’라는 것이 ‘누군가 싸우다 죽는 것’으로 각인됐던 것 같다. 다들 그런 오래전의 ‘원체험’을 극복하며 새로운 영화에 눈뜨게 되는 것일 텐데, 왠지 나는 여전히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극장 폐관 소식에, 문득 다른 이들의 원체험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 다들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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