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대비를 죽이고, 한명회를 부관참시하고 반대파들을 숙청하는 등의 사실에 더해 연산의 행각은 더 디테일하고 집요하게 그려진다. 낙마를 하고서 자신을 해하려는 간신들의 표정을 깨닫고는 그 자리에서 말의 머리를 잘라버리고, 그 순간 보았던 황새를 빌미로 조선의 모든 황새를 절멸하라는 명을 내리는 왕이다. 온갖 엽기적인 난교를 즐기고, 여성들로 하여금 기괴한 체위를 시연하도록 하여 그림으로 그리며 예술입네 치하하는 왕, 아녀자들을 지아비 앞에서 농락하고 파리 목숨보다 더 가볍게 그들에게 활을 쏘아 죽이는 왕. 권력이 있기에 가능했지만 결국 그의 행동 어느 하나 이성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사이코패스의 그것이다. 몸속 혈관 모두가 ‘화’로 응집되어 있는 연산은 김강우라는 배우의 외피를 입고서, 영화 내내 주체할 수 없는 ‘광기’를 발산한다. 뛰고 고함치고 울부짖는, 연산의 모든 행위는 숨 쉬는 것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발산의 에너지로 점철되어 있다.
현장에서의 김강우는 주지훈의 표현에 따르면 “말이 없는 과묵한 사람, 스탭들도 알아서 대접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큐 사인이 들어가는 순간, 모든 걸 내뱉어야 했다. 체력 소모가 큰 캐릭터다보니 현장에서 말을 많이 하면 기가 빠져나가더라.” 예민함과 난폭함을 오가는 연산의 상태가 촬영 내내 지속됐고, 그 시간 동안 잠 한번 편히 자지 못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일부러 우울한 음악을 계속 듣고, 현장 나갈 때는 펑키한 음악을 들었다. 그런 외적인 장치들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 사극이라는 장르가 안긴 고민도 컸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인물이라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이기까지는 고민도 큰 캐릭터였다. “밀고 가자. 내가 가는 길이 정답이 아닐까. 이런 마음을 먹고 리얼리티라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보니 그때부터 좀 풀리기 시작하더라.”
이 험난한 도전장의 시작은 매우 소박했다. <간신>의 제작사인 수필름에서 만든 <결혼전야>(2013) 외 무대 인사를 다닐 때, 이동하는 버스에서 홍지영 감독이 수필름의 차기작이 <간신>이라고 언질을 줬다고 한다. “그때 무슨 역할을 하고 싶냐고 묻더라. 그래서 연산군을 하면 재밌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코가 뀄지 싶다. (웃음)” MBC 드라마 <나는 달린다>(2003)로 주목받는 신예로 데뷔한지 벌써 12년차 연기자, 그간 김강우는 드라마, 스릴러, 액션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매진해왔다. 도전의 영역과 스펙트럼도 넓었다. 재벌가 백씨 집안에서 기생하며 그들의 모습을 닮아가는 <돈의 맛>(2012)의 영작, 여배우의 죽음을 파헤치는 <찌라시: 위험한 소문>(2013)의 매니저 우곤, 해고 당한 마트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앞장서는 <카트>(2014)의 동준 모두 이미지와 톤이 어느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다채롭다. 이 다양한 시도 속에서도, 사극은 그에게 첫 도전이자 신선한 경험이었다. “지금이 좋다. 연기에 재미가 생기고 이 직업에 흥분하기 시작한 게 불과 몇년 되지 않았다. <간신>은 나 스스로 그런 직업적 의식과 재미를 느낄 때 들어간 작품이라 더 큰 의미를 가진다.” 김강우는 지금은 이 재미를 즐기고 싶다고 말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게 점점 없어진다. 작품은 결국 자기 것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멜로가 하고 싶다고 해도 형사물이 들어오는 게 이 세계다. 그러니 마음을 비운다. 일이 좋으니, 지금은 뭐든 가리지 않고 어떤 장르든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