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선수들의 경기에 열광하면서도 올림픽이 내세우는 ‘숭고한’ 가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올림픽에는 참가하는 것 자체가 진정한 의미다, 영리를 추구해서는 안된다,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안된다 등 올림픽이 내세우는 이상은 허울만 좋을 뿐이다. 비영리 논리 때문에 선수 유니폼과 경기장에 광고를 하지 못하게 하지만, 정작 IOC는 거액을 후원하는 기업- 코카콜라, 아디다스 등- 의 상품을 배타적으로 보호해준다. 어마어마한 TV중계권료를 챙기고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영리적’인 프로 선수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올림픽은 여러 차례 정치적으로 이용돼왔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나치의 선전장이었고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은 독재정권의 정당화 수단이었다. 따지고 보면 1988년 서울올림픽 또한 12·12 사태와 광주학살을 자행하며 권력을 빼앗은 전두환 정권의 허약한 정당성을 치장하기 위해 유치하지 않았던가. IOC와 각국 올림픽위원회, 각종 국제연맹을 둘러싼 스포츠 정치 또한 현실 정치 못지않게 혼탁하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올림픽 경기에 몰두한다. 그건 스포츠가 함의하고 있는 상징성 때문일 수도 있다. 펜싱이 무자비한 칼싸움을 일정한 룰로 통제한 것이고 복싱, 레슬링, 유도 등 격투기가 ‘리얼 파이트’의 순화된 형태라는 점을 고려하면 스포츠는 인간 내면에 잠재된 야만성을 해소해주는 듯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열광하는 진짜 이유는 스포츠가, 올림픽이 갖고 있는 드라마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는 노력과 고통이 있고 성공과 영광이 있으며 실패와 좌절이 있다. 음모(수영, 펜싱, 유도의 심판들)나 반전(스페인 축구팀의 예선 탈락!), 서스펜스(200m 자유형 경기에서 쑨양의 겁나는 막판 스퍼트), 코미디(최병철 선수의 동작), 공포(사재혁 선수의 안타까운 부상)도 있다. 아무튼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준 모든 선수들에게 감사드린다. 모두 끝까지 최선을 다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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