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움. 누군가에게 당연하게 주어진 이 단어는 세상의 무거운 짐들이 어깨 위에서 내리누르던 김규리에게 절실했다. 노출, 남장, 승마, 사극 등 한 작품에서 다양한 도전을 하거나(<미인도>(2008)), 강인한 인내심을 안으로 삭여야 하는(<하류인생>(2004)) 등 치열한 고민을 요하는 캐릭터에서 당분간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쩌면 ‘연기’보다 ‘실제 삶부터 편해지고 싶은 마음’이 먼저 작용해서가 아닐까. “맞다. 연기를 통해 활어, 아니 비린내의 느낌까지 생생하게 경험한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는 물론이고 로맨틱코미디 장르인 <사랑이 무서워>를 선택한 것도 연기를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사랑이 무서워> 시나리오가 들어온 것도 이때다. “바보. 한마디로 바보 같은 여자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든 자신이 맡은 ‘소연’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얼굴과 몸매 모두 갖춘 홈쇼핑 모델 소연은 사랑하는 남자의 아기를 임신한 채 버림받는다. 그런 그가 눈길을 돌리는 상대는 자신을 짝사랑하는 순수한 남자 상열(임창정)인데, 남자라면 다소 화가 날 만한 상황이다. “얄미운 여자다. 첫째, 자신을 버린 남자에게 왜 ‘나쁜 자식’이라고 말을 못할까. 둘째, 모든 피해를 혼자서 감수한다. 셋째, 또 다른 바보(임창정)에게 상처를 준다. 세 가지 이유로 소연은 바보다.” 못된 여자로 표현하라는 정우철 감독의 지시에 맞선 것도 그래서다. “소연은 못된 여자가 아니다. 그것밖에 모르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여자다.” 실제 성격과 괴리감이 큰 캐릭터임에도 김규리는 편한 마음으로 연기에 임했다. 코미디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상대배우 임창정도 그가 편하게 연기하는 데 한몫했다. “오빠(임창정)는 현장에 올 때 수많은 경우의 수를 준비해온다. 그처럼 준비를 하지 않는 연기 스타일인 나는 오빠가 던져준 호흡을 받는 데 주안점을 뒀다.”
촬영 전 치열하게 캐릭터를 분석하고 매 순간 감독에게 “왜?”라고 물었던 과거와는 큰 변화다. “예전에는 (연기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몰랐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내던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경험이 쌓이면서 결국 내가 맡은 인물은 나를 통해야 드러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인생의 한 전환점을 돈 김규리는 숨고르기도 전에 윤계상과 함께 출연하는 <풍산개> 개봉과 곧 크랭크인하는 양윤호 감독의 3D영화 <기생령>의 촬영을 연달아 기다리고 있다. “바빠서 연애를 못하는 게 아니냐고?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내게 다가오는 걸 무서워하는 것 같다. 내 경계를 뚫고 들어오는 남자가 분명 있을 것 같은데…. 뚫고 오길 기다려야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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