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볼 영화가 없다. 한달여간 박스오피스 1위 영화의 첫주 흥행성적이 2천만달러를 넘지 못했으니 말이다. 요즘의 월스트리트만큼이나 썰렁한 극장가가 계속되는 지금, 영화팬들의 관심사는 화끈한 브로드웨이로 쏠리고 있다. 올 가을 시즌 브로드웨이에는 유난히 낯익은 영화배우들의 얼굴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끌고 있는 작품은 당연히 9월25일 시작하는 피터 셰퍼의 <에쿠우스>로 주인공 앨런 역을 맡은 대니얼 래드클리프(<해리 포터>)의 장시간 전신 누드 연기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래드클리프의 누드 연기는 지난 1998년 니콜 키드먼이 ‘톰 크루즈 부인’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연기력을 인정받았던 연극 <더 블루 룸> 이후로 처음 있는 전성기 배우의 과감한 노출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공연 입장권이 최고 300달러를 넘어서고 있지만 래드클리프의 연기를 보기 위한 팬들의 줄은 계속 이어지고 있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공연장 밖에서 그의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인파로 <에쿠우스>가 공연되고 있는 브로드허스트 시어터는 매일 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 밖에도 키드먼에 이어 또 다른 ‘톰 크루스 부인’ 케이티 홈즈가 존 리스고, 다이앤 위스트, 패트릭 윌슨 등과 함께 10월16일 막이 오르는 아서 밀러의 <올 마이 선스>에 출연한다. 10월1일 오픈하는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에는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와 피터 사스가드가 출연하며, 10월7일 오픈 예정인 <사계절의 사나이>에는 프랭크 란젤라가, 10월23일 오픈하는 데이비드 마멧의 <스피드-더-프라우>에는 제레미 피번이, 11월17일 오픈하는 또 다른 마멧의 연극 <아메리칸 버팔로>에는 존 레기자모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그러나 영화팬들과 영화계의 관심과는 달리 연극계 인사들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잇단 브로드웨이행을 그리 곱게 보고 있지 않다. 특히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연극평론가 벤 브랜틀리는 ‘스크린에서 무대로의 위험한 도약’이라는 기사를 통해 연극무대에서 단련된 연기자가 아닌 할리우드 배우들의 섣부른 브로드웨이행이 연극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며 회의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