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소설가 카투리안(최민식)이 써내려간 괴기스런 이야기들에서 시작한다. 아이들의 잔혹한 죽음을 이야기 소재로 삼던 카투리안은 취조실로 끌려가 투폴스키 형사반장(최정우)과 에리얼 형사(이대연)에게 심문받는다. 카투리안의 소설 속 그것과 비슷한 방식의 어린이 살인사건이 연달아 일어났기 때문. “한번도 법을 어겨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카투리안 앞에 그의 형 마이클(윤제문)이 끌려오고 그들의 대화를 통해 이 형제의 불운한 과거사가 폭로된다. “형하고 나, 내 이야기 중에서 하나가 사라져야 한다면 가장 먼저 죽어야 하는 것은 바로 형이야.” 근래 영화 <괴물> <우아한 세계>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윤제문은 현실과 이야기 속 세계의 경계가 혼미한 마이클에 대해 “동생이 쓴 이야기 속에 살고 있다”며 “부모의 학대로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연기 호흡은 무척 좋다. 대한민국 연극계에서 알아주는 높은 경지에 이른 도사 같은 분들과 함께 출연해 기쁘다. (웃음)”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최민식은 함께 연기하는 동료 배우들은 물론 조재현이 출연한 연극 <경숙이, 경숙 아버지>로 큰 호응을 얻었던 박근형 연출가를 추어올렸다. “어눌한 말투에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분이지만 긴장감을 놓지 못할 정도로 예리하기도 하다. 지적할 때는 몇 단계를 넘어서서 생각한다. 흥행 여부를 떠나 작업 자체의 의미가 클 거라고 믿었다.” <필로우맨>은 5월1일부터 20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연극연출가 박근형
“연습량이 많아서 술 마실 시간도 없다”
“<필로우맨>은 어른을 위한 동화다. 잔혹하지만 한편으론 외롭고 슬픈 이야기다. 마틴 맥도너가 아일랜드 작가라서 작품에서 서양 사람들이 지닌 정서가 우러난다. 그걸 어떻게 우리 식으로 표현하느냐가 관건이다. 예컨대 대사가 무척 많은 작품인데 서양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에 반해 말수가 적지 않나. 작품을 준비하는 중에 시카고에서 <필로우맨> 공연을 봤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맥도너를 만나기도 했다. 휴식시간에 팸플릿에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한 기억이 있다. (웃음) (술자리에서 연기지도를 한다고 알려졌는데) 그거 다 낭설이다. 누구나 다 그런다. 술 마시다가도 생각나면 작품 이야기하고. 이번 연극은 분량이 많은 관계로 10시까지 연습을 해서 술 마실 시간도 많지 않다. 스타를 통해 뭘 해보려고 한 적은 없다. <경숙이, 경숙 아버지>에 재현씨가 출연했는데 본인도 좋다, 하고 싶다고 그러더라. 누구를 캐스팅하겠다고 먼저 생각하지는 않는다. 최민식씨야 연기를 워낙 잘하고 대본을 보더니 합시다 해서 가게 됐다. 1989년 최민식씨가 <실비명>에서 연기하는 걸 보고 저 사람 되게 잘한다 했는데 요즘은 그때보다는 못하는 것 같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