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보니 못사는 집 아이들의 칭얼거림 같아 낯이 뜨겁다. 그래도 이런 말을 꺼낸 건 여기저기 난 흠집과 지워지지 않는 때와 얼룩이 작별을 고하는 지금, 문득 사랑스럽게 느껴져서다. 아마 이사를 해본 사람은 다 한번쯤 경험하는 일이지만 더럽고 불편하고 지겨웠던 물품들에 한동안 손을 떼지 못하는 순간이 생긴다. 이삿짐센터 직원이 짐을 쌀 때와 집주인이 짐을 쌀 때, 전자가 후자보다 몇배 빨리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일 것이다. 장롱이나 선반 깊숙이 처박혀 있던 어떤 물건을 놓고 내가 언제 샀더라, 누가 언제 준 것인데, 하며 옛일을 떠올리다보면 이삿짐 싸는 일은 매번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서랍 깊숙한 곳에서 옛날 편지나 잃어버린 줄 알았던 물건이라도 찾으면 그 시간은 정말 하염없이 늘어난다. 이사는 과거와 현재의 교차점이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순간이 이사를 더디게 만든다면 미래는 이사를 재촉하는 힘일 것이다. 더 넓은 공간으로 새로운 가구를 들여놓으면서 이사하는 경우라면 씩씩하겠지만, 더 좁은 곳으로 헌 가구를 들고 가는 거라면 힘이 조금 달릴 것이다. <씨네21>로 말하자면 전자이긴 하나 그렇다고 강북의 서민아파트에서 강남의 고층아파트로 이사가는 것 같은 일은 아니다. 같은 건물 같은 층에 몇평 정도 넓어지는 일이니 호들갑 떨 이유도 없다. 솔직히 난 그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갑자기 부자가 되면 감당못할 것 같은 두려움을 갖고 있어서다(신년 초 회사에서 직원 모두에게 로또 한장씩을 나눠줬을 때도 혹시 맞으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다 ^.^). 공간이 조금 늘어나는 정도의 이사는 그래서 마음이 놓인다. 내가 예측할 수 있고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큰일을 도모하긴 어렵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맞다. 난 큰일을 도모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굳이 구분하자면 가늘고 길게 가자는 쪽일 것이다.
새로 이사할 공간은 어제와 다르지 않은 내일을 약속하는 곳이라 안심이 된다. 늘 이런 식으로만 생각해선 발전이 없겠지만 조금씩 바뀌고 조금씩 좋아지는 세상이 나는 좋다. 자고나면 더 높은 빌딩이 들어서는 첨단 도시보다 수백년 역사가 켜켜이 그대로인 옛 도시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사하기 전날 낡은 물건을 버리려다보니 그런 상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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