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파도>가 잘되고 있다. 어느 정도 예상했었나.
=우리도 사람들의 비관적인 예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웃음) 하지만 예전에 <동갑내기…> 때도 인지도 조사를 하면 <이중간첩> 등이 앞에 있고, 개봉 직전까지도 4등이었다. 그래서인지 특별히 걱정을 많이 하진 않았다. 내부에서는 시나리오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문제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까불지마>나 <고독이 몸부림칠 때> 같은 영화랑 비교를 했던 점이다.
-두 번째 작품인 <맹부삼천지교>는 그다지 장사가 잘 안 됐던 걸로 알고 있다.
=그래도 결국 90만명 수준까지는 들었던 작품이다. 조금 손해를 보기는 했지만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장사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작품이었다. 특별히 감독이 영화를 못 찍었다든가 시나리오가 나빴기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조재현과 그 아들의 관계를 통해 감동을 줬어야 했는데 너무 다른 두 아버지, 조재현과 손창민의 코믹한 갈등을 너무 부각시켰던 것이 문제 아니었을까.
-수입에서 제작으로, 업종을 변경한 가장 큰 이유는.
=외화를 수입할 때부터, ‘우리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당시에는 <바톤 핑크> <하이힐> <월레스와 그로밋> <어글리> 같은 영화를 수입했다. 그런데 해외시장에서 작은 수입사가 사들일 수 있는 영화가 점점 줄어들고, 과다경쟁이 심해지면서 수입영화 시장이 점점 축소되는 걸 느꼈다. 해외마켓에서 영화를 많이 봤던 안목이 영화 제작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고, 색깔이 분명한 한국영화로 외국시장에 도전하고 싶었다. 베어엔터테인먼트 이름으로 <휴머니스트>를 제작하면서 처음으로 제작에 뛰어들었고,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영화 제작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
-<동갑내기…>를 비롯해서 그간 제작한 영화들은 수입영화를 선별하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개인적 취향보다는 흥행이 먼저다. 그래도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동갑내기…>가 그 무렵 흥행영화들에 일종의 표본이 되지 않았나 싶다. 500만 가까이 관객이 들 줄은 몰랐지만 어느 정도 장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코리아엔터테인먼트 같은 소규모 후발주자의 한계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우리가 <올드보이>나 <살인의 추억> 같은 작품성으로 승부를 거는 일종의 작가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관객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외화를 수입할 때 좋은 작품들이 관객의 외면을 받는 것이 계속되니까 너무 힘들더라.
-이전의 경험이 제작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나.
=누구보다도 많은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의 이런 아이디어는 어떤 식으로 변형시키면 한국에서 먹힐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요즘에도 예전에 봤던 영화의 어떤 아이템을 이용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한다.
-언제나 입봉 감독들을 기용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시나리오 작가도 언제나 신인이었다. 모든 영화를 내부의 아이디어 회의에서 출발하는 우리의 방식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검토한 아이템을 바탕으로 방향을 정하고 그뒤에 작가를 영입해서 시나리오를 쓰게 한다. 감독이 정해지는 건 그 다음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중견감독들의 경우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해서 그렇게 되기가 힘들다. -철저한 기획영화로 승부를 봤다는 얘긴가.
=일반적으로 기획영화는 특정한 관객층을 염두에 두고 만드는 것임을 생각하면 우리 영화를 기획영화라고 부르는 건 무리가 있을 것 같다. 그저 재미를 우선적으로 추구할 뿐이다. 회사 전체 직원이 8명인데 그중 기획실 직원만 4명이다. 내부에서 검토가 끝난 영화만 제작에 들어간다.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는 경우에만 제작을 결정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기획에 들어간 영화가 엎어진 경우는 없다.
-아무래도 소재를 가장 우선시하게 되는 것 같다.
=소잿거리를 찾아다니다보니 다른 영화와 겹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어린 신부>는, 우리가 <12세 신부>라는 제목으로 준비하던 영화와 겹쳤고, KBS 다큐멘터리 <건빵 선생의 약속>의 영화화를 준비했는데 <꽃피는 봄이 오면>과 비슷해서 포기했다. 가장 아쉬운 건, <가발>을 찍고 있는 원신연 감독이 준비하던 <국가대표 원치승>. 5살 지능을 가진 20살 청년이 마라톤에 도전하는 내용인데 <마라톤>과 너무 유사해서 제작을 미뤘다.
-제작 중인 영화는 어떤 것들이 있나.
=3월 초 부산에서 크랭크인한 <가발>과 6월 쯤 촬영에 들어갈 <싸움의 기술>의 있다. 각각 원신연, 신한솔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가발>은 두 자매의 애증을 다룬 공포영화인데 예전부터 머릿속에 있었던 아이템을 영화화한 거다. 공포영화처럼 장르의 틀이 분명한 영화라면 언어의 장벽도 그리 높지 않을 것이고 해외 수출에 나름대로 유리한 지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발>이 해외시장을 겨냥한 작품이라는 이야기인가.
=지금 만들고 있는 <가발>이 국내에서 개봉을 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 해외 배우를 출연시켜 다시 리메이크하고 싶다는 얘기다. 한국처럼 시장이 작고 쓸 만한 배우도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그런 식의 시장을 넓히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투자사인 CJ 역시 마침 해외시장 개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시기라 이런 계획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기획 중인 아이템도 여럿이라던데.
=일본 유학생을 가르치는 체대 남학생을 주인공으로 <동갑내기 과외하기2>를 준비 중이다. 음치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도 있는데, 바가지를 두드리거나 다듬이질을 하면서 박자를 익히는 장면 등이 있는, 난타 같은 로맨틱코미디다. <청담보살>이라는 가제로 불리는 영화는 청담동의 젊은 점쟁이인 여자주인공의 사랑찾기에 대한 영화다. -아이템을 개발할 때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무언가.
=마케팅. 무엇을 팔 것인지, 포인트가 분명해야 좋은 시나리오가 나온다. <마파도> 같은 경우는 작은 섬에 할머니 다섯명이 전부라면, 그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로또나 대마 같은 기발한 소재도 있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