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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의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 참외 상자 이야기
김사월 2025-07-03

트위터(현 X)에서 본 잡담인데요, 아주 인기 있는 담론은 아니었지만 동네 맛집 앞 정도로는 북적거리며 이야기가 드문드문 이어지는 중이었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인간으로 살며 한살 한살 나이를 먹다보면 자연히 나보다 윗세대의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중장년층이 되어보면 나보다 손윗사람이었던 이들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 있는 것이 느껴진다고 하네요. 만약 당신이 이 세상의 최고령자라면 당신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죽고 없다는 뜻이 됩니다. 만약 제가 최고령자가 되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지금부터라도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연하 친구를 좀 사귀어두는 것도 좋겠습니다. 아무튼 100여년의 시간이 지나면 세상에 있었던 웬만한 사람들은 리셋된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이 사실을 떠올리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개인적으로는 ‘어차피 다 죽어’, ‘언젠가는 다 사라질 것’ 같은 유사품들보다 조금 더 와닿는 느낌이 있습니다. 유한성에 대해서라면 과하게 염세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심하게 해학적으로 농담하는 것도 즐기는 편이지만 조금 건조하게, 시간의 벨트 위에 탄 우리가 자연히 하나하나 사라진다는 사실을 자각해봅니다. 누가 내 앞자리와 뒷자리에 타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모두 공평하게 사라진다니 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가끔 빛나지만 대부분 멍청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의 시간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지구 입장에서는 몇 번째 반복 중일지 모르겠지만 다시 여름의 시기가 돌아왔습니다. 이즈음이 되면 저는 부모님이 직접 기른 농산물을 소포로 받습니다. 대대손손 농사를 짓던 집에서 태어난 저의 아버지는 일하기 위해 도시로 떠났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어머니 역시 시골 탈출에 성공했다가 결국 아버지와 함께 돌아오게 된 케이스입니다. 이런 흐름으로 본다면 혹시 저에게도 농촌으로 귀환해야 하는 강한 운명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재로서는 부모님이 주신 택배를 날름 받아먹는 평범한 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종목이라면 참외 농사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시즌이면 저의 냉장고 맨 아래 신선칸에는 노란 참외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 무게를 견디다 못해 언젠가부터 이 신선칸에는 심하게 금이 가 있지만, 참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도착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부서진 채로 쓰고 있습니다.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에세이 <고맙습니다>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80년 이상을 살아보니 한 세기가 어떤 시간인지를 상상할 수 있고 몸으로 느낄 수 있다고요. 이런 글귀를 읽을 때면 고작 요정도 살아낸 내가 뭘 안다고 깝죽대는구나 싶어 숙연한 기분이 드는데요. 그래도 10년 정도의 시간이라면 약간은 알겠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4월에 작은 공연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부모님은 관객들과 나눠 먹으라고 참외를 한 박스 보내주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저는 그게 못내 부끄러웠습니다. 참외 콘서트가 아니고 내 콘서트인데 공연장에 웬 참외냐고 관객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여쭤보면 서울 사람들은 참외 좋아한다더라 같은 막무가내 대답만 돌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련한 솜씨로 그걸 쓱쓱 썰어 관객석에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뭐라도 줄 수 있고 나눌 수 있으니 좋다고 하시던 그 마음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느낄 때쯤 제가 나눠 드릴 참외는 몇 상자에서 몇십 상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받기 죄송할 정도의 양이 될 때까지 부모님은 저의 콘서트장에 매번 참외를 보내주셔서 관객들과 나눌 수 있었는데요, 지난해부터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제 4월에는 참외가 잘 열리지 않는다고 하네요. 회사 차 안에 참외 상자를 가득 실어다가 그걸 콘서트장에 풀어놓고 스태프들이 관객석 하나하나 참외 봉투를 놓아주던 그 풍경은 이제 저만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못된 마음이지만 언젠가 참외 상자가 도착하지 않는 날을 상상하는 게 너무 무서워서 원프리 참외 이벤트가 중지된 것이 기후 위기 때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가 만든 음반이나 책을 잘 선물하지 못하겠더라고요. 한두장도 아니고 뭘 많이 낸 편이니 받아주는 사람이 예의상 받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공연 초대도 그래서 잘 못 하겠습니다. 매년 공연을 하고 있으니 자꾸 와달라고 하기도 좀 그렇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만드시는 농산물은 해가 갈수록 더욱 자랑스럽게 느껴져서 친구들과 자주 나누게 됩니다. 제가 뭘 하겠다고 까불고 있지만 진짜 삶을 사는 사람이 기른 농작물만큼 가치 있는 창작물을 만든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한 작가 친구는 나눔 받은 농작물이 감사해서 어머니에게 책과 함께 편지를 선물하기도 했는데 아니, 어머니가 그 애에게 소포와 함께 답장을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살면서 어머니의 편지를 받는다거나 하는 경험을 못해봐서 ‘우리 엄마가 글도 쓴다고?’ 정도의 수준으로 놀랐었는데 이제 씨네리 에세이 지면은 제가 물러나고 이분이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시골에 정착한 지 4년째.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젠 텃밭에 작물들을 키워 나눔의 기쁨을 맛보고 있어요. 자연의 섭리는 참 묘하죠. 지난해 늦가을에 심은 여리디여린 양파 모종은 혹한의 계절을 견뎌내고 땅속 튼실한 열매를 선사하죠. 초봄의 추위 속에서 심은 감자 싹은 땅속에서 알감자가 주렁주렁 열려 있네요. 이 작물들이 먹거리가 될 때쯤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네요. 장마 소식에 그저께 서둘러 수확해서 조금은 건조들이 될 때쯤 오늘 빗방울이 들기 시작하는군요. 사는 모습도 너무 예쁘고 해서 조금 보내니 먹고 힘내서 승승장구하길 바라요. 사월 엄마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