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진웅은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의 ‘패거리2’ 역으로 시작해 20년 넘게 수많은 영화와 시리즈에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끝까지 간다>의 냉혈한 창민, <독전>의 형사 원호,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부산 조폭 판호 등 주로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해온 배우이지만, 그는 언제나 ‘프렌들리’한 매력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친밀함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환경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고민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간 <씨네21>과 많은 인터뷰를 나눠 오기도 했지만, 이번 인터뷰는 특히 인간 조진웅의 생각을 더 깊이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자리였다.
- 올해 에코프렌즈를 맡게 된 배경은.
평소에도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관심이 많았다. 환경은 우리 삶에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언제든 관련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우리가 환경문제를 인식하는 순간, 재앙은 이미 다가온 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도 컸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세상은 거대한 슬픔을 마주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만나야 할 존재가 거리 두기라는 규제로 멀어진다는 현실에 나 역시 참 많이 울었다. 배우 일을 하고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어쩔 땐 이런 삶이 부질없다고까지 느끼게 되더라. ‘내가 계속 기부한다 해도 세상이 얼마나 바뀔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지?’, ‘이렇게 미약한 존재인 내가 내가 사는 세상을 너무 방관하고 사는 것은 아닌가?’라고 계속 되뇌었다. 이런 시점에 에코프렌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다.
- 에코프렌즈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한 것일까.
언제나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단 마음이 컸다.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고 대중과 만나면서 내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고, 내가 그 책임감을 바깥에 외칠 수 있는 수단은 결국 이야기라고 느꼈다. 영화를 통해, 영화제를 통해 그 이야기를 내놓고 싶었다. 기후 위기를 비롯한 환경문제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이기심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이기심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합심하여 팬데믹도 극복했지 않나. 할 수 있다. 누군가가 외치면 우리의 본질적인 이기심을 슬프게 되새길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에코프렌즈를 맡게 됐다. 내게도 아주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다.
- 언급한 인간의 이기심 같은 주제를 어떤 상황이나 이야기, 사건이나 감정으로 풀고 싶은지.
제작을 준비 중인 한 이야기는 전쟁을 주제로 삼고 있다. 전쟁은 누구 한 사람의 판단일 수도 있고, 결국 어떤 집단의 승리를 위한 맹목적 수단인데 이걸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 늘 고심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수많은 수탈과 핍박으로 단련된 ‘불복의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나. (웃음) 부정적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좋게 말하면 자긍심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다면 문제를 직시하고 원상 복구하는 일이 우리의 힘이라고 느낀다. 환경문제도 마찬가지다. 나부터 시작하면 우리나라가 시작하고 전세계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얘기를 하면 너무 나이 들어 보이긴 하는데… (웃음) 우리 세상은 결국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줄 땅이다. 이걸 지금처럼 방치하겠다는 건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느낀다.
나부터 간다
- ‘나부터 한다’라는 점이 핵심인 것 같다. 에코프렌즈는 결국 본인의 영향력을 외부로 퍼뜨리는 역할이니까. 이런 면에서 배우 조진웅의 프렌들리한 이미지도 큰 이점인 것 같다. 사실 조폭이나 형사 등 강렬한 배역을 자주 맡아왔는데 이처럼 친밀한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는 뭘까.
너무 친밀해서 문제야. (웃음) 평소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줄이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 영화를 본 분들이 사람 조진웅을 봤을 때 너무 큰 격차를 느끼지 않길 바란다. 아마 그래서 친밀하게 여겨주시는 것 아닐까. 서울국제환경영화제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누군가가 이런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의식을 퍼뜨리고 싶다기보다는 당장 내가 먼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친숙함을 드리고 싶다. 예를 들면 이제 내가 에코프렌즈니까 할 수 있는 말들이 더 생기지 않겠나. 지인이나 후배들한테 “환경문제, 그거 너가 살고 있는 일상의 문제야. 방금 너가 탄 그 버스, 걷고 있는 길, 숨 쉬고 있는 공기 모두 다. 그러니까 이왕이면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 한번 알아봐. 공회전, 너무 오래 하지 말고!” 같은 것들이다.
- 일상의 순간을 마주하면서도 이야기의 맥락이나 이유를 고심하는 것 같다. 평소의 습관일까.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연극배우로 활동할 때 손턴 와일더의 <아워 타운>이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삶은 아름답다’라는 아주 명확한 주제의 작품이다. 평소 그냥 지나쳤던 평범한 하루들, 창문에 걸친 커튼, 초록빛의 잎사귀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좋은 얘기다. 그래서 무료 공연이어도 지역까지 내려가서 연극을 추진하고 싶었고 대구 공연도 일정을 잡아뒀는데 일정 문제로 가지 못하게 됐었다. 그때쯤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다.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우리가 대구에 가서 공연을 진행했으면, 그래도 삶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보여줬다면 무언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너무 슬펐다.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이야기와 메시지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연기를 시작한 거다. 영화는 몇백만 관객이 보는 예술이니까.
- 관객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가 배우 조진웅을 더 프렌들리한 사람으로 만들었을 수 있겠다.
나를 바라봐주는 분들, 이런 나라도 팬이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 응원 메시지를 주시는 분들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고맙나.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분들인데. 이분들이 없다면 난 존재할 이유도 당위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언제까지고 주연을 맡고 큰 작품에 나올 순 없을 거다. 금방 나이 들 테고. 그러니 지금 힘들더라도 최대한 함부로 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절대 내 성정이 좋다거나 성격이 올바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연기한 캐릭터들에게 많은 부분을 배우며 살고 있다.
- 이를테면 지금껏 연기한 역할 중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뿌리 깊은 나무>의 ‘무휼’을 연기했을 때가 떠오른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서 거의 유일하게 픽션인 인물이다. 그렇다면 이 인물이 왜 필요할까? 왜 이렇게 곧은 성정을 가진 인물일 수 있을까? 여러 고민을 하게 되고 이 친구의 성격을 분석하고 전사를 생각하는 등 여러 서브 텍스트를 만들게 됐다. 캐릭터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만나는 선후배 배우들의 성정에서도 늘 감응을 받는다. 당시 함께 작품을 했던 장혁 배우는 정말 현장에서 단 한번도 찡그린 적이 없다. 무더위 속에서도 상대방을 먼저 걱정하고 “진웅아 괜찮아?”라면서 다독인다. 그럼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미안하다. 내가 지금부터 더 정신 차릴게.” 역할을 통해서든 동료들을 통해서든 늘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기분 좋은 변화, 성장으로
- 연기뿐 아니라 영화와 OTT 시리즈의 제작, 연출을 준비 중이다. 어떤 스타일의 작품인지 살짝 알려준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성장드라마다. 인물이 성장하고 타인과 화합하는 이야기. 코미디는 필수고. 멜로도 좋다. 나는 절대 멜로 연기를 못하는 사람이지만 원래 자기가 못하면 훈수는 더 잘 둘 수 있지 않나. (웃음)
- 멜로 연기를 못한다니. 예를 들면 <사라진 시간>에서 아는 척을 할 수 없는 아내를 마주했을 때 울먹거리는 표정 같은 건 너무 완벽한 멜로라고 느꼈는데.
멜로라는 게 단순히 로맨스의 수준에서 끝나는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심리와 정서 속에 평소 정말 치부처럼 드러내지 않았던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여야 한다. 감정의 골이 굉장히 깊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같은 작품을 보면 ‘야, 난 저런 연기 절대 못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슬프니까. 당장 우리 딸이 유치원 갈 때도 슬퍼서 못 참겠는데 저런 상황을 어떻게 참고 연기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 성장드라마를 선호하는 이유는.우리 역시 늘 성장하니까. 중학생 때부터 내 사인을 연습했는데 지금까지 오면서 한 몇십번은 바뀐 것 같다. 처음엔 사인해줄 곳이 없으니까 뭐 동그라미도 여기저기 치고 깃발도 그리고 했는데 갈수록 힘들더라. (웃음) 마찬가지로 대학생 때 읽었던 책이 지금 읽는 책과 다를 것이고, 당장 오늘 한 말들도 다음주가 되면 바뀔 수 있다. 모든 것은 바뀐다. 어쨌든 그런 변화 속에 사는 우리가 이왕이면 성장하는 게 흐뭇하고 기분 좋지 않나.
- 요즘 기분이 꽤 좋을 것 같다. 롯데자이언츠가 2위를 유지 중이다. (조진웅 배우는 프로야구팀 롯데자이언츠의 오랜 팬으로 유명하다.)
롯데자이언츠가 한국야구위원회(KBO) 역사상 5개의 대기록을 가지고 있다. 우선 ‘제일 오래 우승을 못한 팀’, 또 ‘최다 점수 차이로 진 팀’ 등등. 여하간 아주 불명예스러운 기록들이다. 이번에는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