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적은 작은 흔적을 끊임없이 축적할 때, 그리고 뚜렷한 목적을 갖고 부단히 흔적을 축적할 때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난다.” 꽤 오랫동안 이걸 <나무를 심은 사람>에 나온 명문장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장 지오노의 단편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건 1987년 프레데리크 바크의 동명 단편애니메이션을 통해서였다. 이 경이로운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움에 한참 먹먹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중에 원작 소설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 읽었는 데, 소설과 애니메이션의 감상이 뒤섞인 탓인지 시간이 흐른 뒤엔 프레데리크 바크의 파스텔 톤작화 속 노인의 온화한 표정과 저 한 문장만 기억에 남았다. 지금 다시 보니 저 문장은 ‘옮긴이의 말’ 속 한 문장이었다.
<나무를 심은 남자>는 갑작스러운 비극 이후 황량한 자연을 바꿔보겠다고 결심한 남자가 우직 하게 나무를 심어 끝내 풍성한 숲을 가꾸는 이야기다. 아내와 아들을 잃고 홀로 양을 키우며 살아가는 한 남자가 나무를 심고 있다. 아무도 몰라줄 그 사실을 오랜 시간 지켜본 또 다른 남자가 있다. 소설의 진짜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 사람에 대해 정말로 보기 드문 인격의 소유자라 판단하기까지는 수년 동안 그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관찰할 행운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까 이건 ‘나무를 심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 이자 그 고독한 의지를 곁에서 지켜보며 시간을 나눈 화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적을 만드는 데는 한 사람의 의지로 충분하지만 기적을 기억하여 또 다른 씨앗으로 퍼트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사람이 필요하다. 이야기란 두 사람 사이 대화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여기 단편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면 또 한 사람의 의지가 더해진다. 애니메이터 프레데리크 바크는 스스로 나무 심은 사람이 되어 이 작품을 홀로 완성했다. 무려 5년6개월 동안 한 장면 한 장면 불투명 셀 위에 직접 색연필로 그려내는 과정에서 바크의 한쪽 눈이 실명되기도 했다. 기적만큼 아름다운 이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태어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또 다른 나무를 심었다. 다른 길은 없다. 매일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 심은 씨앗들이 피어나 마침내 세상이 바뀐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오늘도 나무를 심으며 주어진 소명을 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때론 예상치 못한 화재로 나무가 불타기도 하고, 누군가에 의해 나무가 통째로 베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머지않아 빠르게 숲이 다시 풍성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건 나무를 심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12월3일 화마에 불탄 숲이 빠르게 재건되고 있다. 길고 힘겹고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서로 마주 보며 존재를 확인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마침내 오늘까지 왔다. 6월3일 이제 곧 씨앗이 싹틀 것이다. 물론 심어야 할 나무는 한 그루가 아니다. 민주주의 숲이 풍성해지고 나면 다시 각자의 나무를 묵묵히 심어야 한다. <씨네21>도 지난해에 이어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올해 22회를 맞이하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두 번째 통권호를 소개한다. 시간이 흘러 이 나무들이 마침내 울창한 숲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