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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석의 R.E.C: 한남동의 시간] 당신을 기록하세요
정윤석 2025-06-05

지난 1월3일 새벽 5시12분, 뉴스 속보가 시작되었다. 대통령 관저를 비추는 거리 화면은 푸르스름했다. 커피포트를 올려두고 어깨를 뒤로 젖혔다. 촬영 중 먹고 남긴 캔디 포장지가 쏟아졌다. 국회, 한남동.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도주 우려, 증거 인멸 가능성,’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의 논리는 간결했다.

새벽 6시, 현장은 관저 밖 모든 골목과 출입구가 차단당한 상황이었다. 머리 위로 헬기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방송사 마크가 보였다. 고개를 저으며 나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경찰 기동대가 동원되었다’는 프롬프트 자막 사이로 밤새 현장을 지킨 기자들의 굳은 얼굴들이 보였다. 바리케이드 앞 경찰과 눈이 마주쳤다. 미처 머리를 말리지 못해 아직도 물기가 남아 있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가볍게 서로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모든 언론사는 관저 앞 상황을 중계하는 실시간 라이브를 전진 배치했다. JTBC는 관저로 헬기를 띄워 전지적 시점으로 중계 화면을 송출했다. 유명 유튜버는 이태원 힐튼 호텔 방에서 영부인 산책을 실시간 중계했다. 초대형 망원렌즈를 통해 영부인의 산책 코스가 전 국민에게 송출되기 시작했다.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처럼, 관저를 들어가는 진입로에는 여러 단계의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고 10m 간격으로 수차례의 검문검색이 이루어졌다. 미로처럼 꼬여 있는 경찰 버스의 벽을 헤치며 나는 또 다른 통로를 찾기 시작했다. 더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연합뉴스는 관저 출입구를, JTBC는 진입 통로를 차지했다. 도이치 모터스 빌딩 옆 가로수 밑에서 대통령 지지자들이 라이브 방송을 준비 중이었다.

“아니 여기까지 와서 유튜브를 보세요?” 포르노그래피를 볼 때 부끄러운 이유 - ‘내가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나를 보기 때문이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비극은 언제나 콘텐츠가 되었고, 콘텐츠는 돈이 되는 법이다. 어디였지. <KINO>이던가. 이미 며칠간 밤을 새운 스태프들의 핀잔 소리에 “만약 대통령이 체포되면, 역사적 장면이 될 수도 있잖아요”라고 누군가가 답했다. “그냥 찍지 말고, 캡처해”라고 나는 웃으며 답했다. “윤석열은 이승만 대통령이다!” 극우단체의 확성기가 울리자, 이어 전광훈 목사가 무대에 등장했다. 그의 목소리가 잠시 떨리기 시작했다. “국민 저항권을 지키자!” 지지자들이 목청껏 소리를 높이며 화답했다. 윤석열 대통령 얼굴로 도배된 트럭들이 줄지어 도착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기타맨을 연상시키는 20대 래퍼가 나타났다. “선지자! 선지자!”를 외치는 지지자들이 “빨갱이래요”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도로에 빨간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감독님, 이 뉴스 진짜예요?” ‘공수처 철수’라는 뉴스 속보 알람이 도착했다. “지금 점심이 넘어가냐?”라는 시청자 댓글들이 이어졌다. 순간 <살인의 추억> 속 일그러진 형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공수처 직원들이 줄지어 내려오는 장면들이 뉴스에 잡혔다. 오후 3시경. 공수처에서 기자회견이 열린다는 공지가 돌았다. 법원은 추가로 구속영장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서부지법을 담당하는 출입 기자들이 과천 청사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관저 앞 기자들이 썰물처럼 빠지자 찬바람이 거세졌다. 이제 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지지자들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애국시민 여러분!” 오후 7시30분, 무대에 도착한 윤 대통령의 변호인이 두툼한 편지 한통을 꺼내들어 낭독을 시작했다. “저는 생중계를 통해 여러분이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는 대통령의 고백이 흘러나오자, 지지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 지금 대한민국이 위험하다”고 진단하며,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 외쳤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전해지자 수만명의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킹덤>의 좀비를 앞에 둔 군주의 연설처럼,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의 표정은 매우 비장해 보였다. 누군가 “Stop the steel!”이라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부정선거 물러가라!” “대통령 만세!”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지는 무대는 다시 뜨거워졌다. “윤석열! 전광훈! 대통령! 선지자!” 멘트와 함께 전광훈 목사가 다시 무대에 등장했다. 사회자가 외친다. “여러분! 구독과 좋아요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국민 저항권을 허락합니다.” “아멘! 아멘!” 슈퍼챗 후원 계좌가 등장하자 금액은 끝없이 올라가고 채팅창 댓글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감독님, 지금 이거 다큐인가요? 픽션인가요?” 순간 시리(Siri) 음성지원 모드가 “픽션”이라 부르는 스태프의 목소리를 자기 이름이라 인식하고 “논픽션은 언제나 기록을 가장한 픽션이었다”라고 답했다. 어색하지만 재치 있는 답변이라 생각했다. 나는 뷰파인더에서 눈을 뗐다. 배터리 부족을 알리는 카메라 경고등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뭘 더 찍어야 하죠?” 연출자의 질문에 시리는 답변했다. “당신을 기록하세요.” 순간, 목 안이 말라왔다. “지금 카메라가 나를 보고 있는 건가.”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지금… 서로 찍고 있는 거 아닌가요?” 혼잣말을 디렉션으로 착각한 스태프가 조심스레 다시 묻는다. 이번 질문에는 시리가 반응하지 않고 있다. 나는 웃으며, 혼잣말을 가장해 다시 답했다. “맞아. 우리는 다시 찍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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