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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부터 스태프, 관객 모두에게 필요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남선우 사진 오계옥 2025-05-29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불청객 아닌 동반자 -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토크 지상중계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임선애 감독, 권잎새 배우, 권보람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왼쪽부터).

영화 <아노라>의 카메라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스트립 클럽을 패닝한다. 여러 신체를 노출하고 접촉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 영화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도마에 올랐다. 주인공 아노라를 연기한 배우 마이키 매디슨이 한 인터뷰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거절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수많은 업계 관계자들과 관객들의 갑론을박이 잇따랐다. 여기에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든든)이 더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지 않았을까.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불청객이 아닌 동반자입니다.” 이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 셋째 날이었던 지난 5월2일, 든든이 전주포럼의 일환으로 개최한 토크프로그램의 제목이기도 하다. 사회를 맡은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가 이 문장 속 ‘불청객’이라는 표현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설명하면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아노라>가 불러일으킨 논란에 더해 귀네스 팰트로, 제니퍼 애니스턴 같은 할리우드 배우 몇몇이 자신들의 섹스 신 촬영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필요하지 않다는 제스처를 취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 화근이었다. 이날 공식 교육과 정을 이수한 국내 1호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로서 마이크를 잡은 권보람씨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연기자의 창의성을 제한하는 존재로 보일 수 있다”는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인티머시 신의 정의부터 짚었다.

“인티머시(intimacy)는 한국어로 ‘친밀함’으로 번역된다. 성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사적인 친밀함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래서 러브신뿐 아니라 광범위한 신체 노출 및 접촉 신을 인티머시 신이라 칭하고 있다. 출산, 수술, 목욕, 수유 신도 인티머시 신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이런 인티머시 신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이해하면 된다. 액션 신을 관리하는 사람이 무술감독이듯 말이다.”

동의 기반 노출 협약, 비공개 촬영 수칙 교육 등 필요

그 역할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미투 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직군이다. 성적으로 민감한 장면은 물론 한편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모든 크루가 안전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 개념을 정립하고 활동해온 선구자 격 인물이 이타 오브라이언이다. 그는 <HBO> 시리즈 <노멀 피플>, 넷플릭스 시리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등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로 참여했고, 미국배우·방송인노동조합(SAGAFTRA)이 인증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교육기관 인티머시 온 세트(Intimacy on Set)를 설립해 후배들을 키우고 있다.

그곳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 또 다른 인증기관인 인티머시 프로페셔널스 어소시에이션(Intimacy Professionals Association, IPA)에서 교육과정을 수료한 권보람 코디네이터에 따르면 온오프라인으로 제공되는 과목들은 “효과적인 의사소통, 갈등 해결, 경계 설정 방법과 성·젠더 감수성, 동의 기반 노출 협약, 카메라앵글과 움직임에 대한 이해 등”으로 상당히 구체적이다. 동작 코칭과 비공개 촬영 수칙 교육도 필수 코스다.

SAG-AFTRA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양성기관을 인증할 뿐 아니라 코디네이터들이 유념해야 할 가이드라인 또한 제시한다. 가이드라인은 인티머시 신이 있는 영화가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고용해 배우·연출자·제작자간 사전 협의를 이끌어내기를 권고한다. 배우가 신체를 어느 정도 노출할 것인지, 카메라는 신체를 어떻게 찍을 것인지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계약서에 명시해야 추후 갈등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촬영 당일에도 할 일이 많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배우가 적절한 보호 의상을 착용하고 있는지, 협의대로 움직임을 수행하고 있는지, 혹시라도 촬영을 거부하고 싶어 하는 의사를 보이지는 않는지 등을 체크해가며 배우를 보호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코디네이터가 개인적인 편견과 의견을 표출하면 안된다는 방침도 있다.

모든 스태프를 위해 필요하다

<갈비뼈>

미국, 영국을 비롯한 영미권 국가와 일본 영화계에서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팅의 개념이 비교적 알려진 반면 한국은 이제 시작이다. 2024년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자격을 획득한 권보람씨도 아직 현장에 투입되지는 못했다. 그를 대신해 권잎새 배우가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권잎새 배우는 2023년 든든이 연결해준 일본인 니시야마 모모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와 함께 한국영화아카데미 단편영화 <갈비뼈>를 촬영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가 든든에 요청해 모모코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신체를 어느 정도 노출할지, 성적인 신을 어떻게 표현할지 감독과 구체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배우가 민감한 장면을 찍을 때 겪게 되는 괜한 두려움과 무서움이 없어졌다. 모모코는 현장에서 변동 사항이 생길 때마다 달려와 내가 괜찮은지 확인했고, 감독과의 명확한 소통을 이끌었다. 현장에서 완전히 보호받는다고 느껴졌다. 연출자부터가 인티머시 신을 어려워하고, 언급을 최소한으로 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배우 입장에서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와 함께 작업하니 촬영이 더 수월했다.”

대담에 동석한, <69세> <세기말의 사랑>의 임선애 감독도 훗날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와의 작업을 기대한다며 덧붙였다. “최근 촬영을 마친 차기작에도 남녀의 스킨십 장면이 있다. 의상감독, 분장감독의 고충도 있었는데 앞으로는 그분들도 현장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라는 존재가 많이 알려져야 할 것 같다.” 권보람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도 끄덕였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배우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임선애 감독 말씀처럼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모든 스태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에게는 성적인 장면 촬영 중 트라우마를 느낀 스태프를 보호해야 하는 역할도 있다.” 결국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배우, 스태프, 나아가 그들이 완성한 결과물을 보게 될 관객까지도 염두에 두는 또 하나의 스태프다. 관객이 한국영화의 성인지감수성에 안심할 수 있도록, 그 쓰임이 널리 알려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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