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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의 디스토피아] 인공지능과 ‘제너럴리스트’의 종말

번역할 적당한 용어가 없어서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는 영어를 그대로 쓰는 것을 용서하시기를. 이 말은 ‘스페셜리스트’ 즉 전문가와 대비되는 의미로서, 묘하게 경멸의 의미를 담는 경우도 많다. 이것저것 잡다하게 많이 알기는 하지만 자기 고유의 전문 영역이 없어서 막상 어느 한 분야에서도 권위를 가질 수 없는 지식인과 기능인을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사회와 직장에서는 물론 심지어 학계에서도 찬밥이 되기 십상이다. 때깔은 좋고 폼은 날지 몰라도 막상 어디에 써먹기는 힘든 ‘은도끼’ 취급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언가 하나의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듣는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 부닥치는 가지가지의 문제들에 꼭 맞는 전문가가 존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구두와 이를 고칠 때에는 구두수선공과 치과의사가 있지만, 출산율 저하 문제나 남녀 갈등 문제 등에 그런 전문가가 있을 리가 없다. 제너럴리스트들은 여기에서 반격의 실마리를 잡는다. 여러 분야에 걸친 지식을 두루 종합하고 여기에 윤리적·정치적 문제까지 고려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지금처럼 여러 큰 변화와 도전으로 기성 사회시스템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순간에는 기존의 전문가들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아 ‘융합’이나 ‘통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 힘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제너럴리스트 대 전문가라는 대립 구도는 인공지능의 대두로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일단 각종 전문직의 전문가들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기업의 여러 실무 담당자들의 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회계사나 변호사, 의사와 같은 전문직의 업무도 인공지능으로 크게 대체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사방에서 나온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제너럴리스트 또한 덮쳐오는 인공지능의 거센 물결 앞에서 큰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제아무리 박학다식한 사람이라고 해도 오만가지 지식 분야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인공지능의 적수가 될 수는 없다. 융합을 인공지능은 못하던가? 최근 몇년간 사람들은 대답하고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인공지능에 물어보는 일을 거의 생활화해버린 상태가 아닌가? 물론 인공지능이 이런저런 문제들에 뾰족한 답을 주는 마술사는 아니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제너럴리스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냉정하게 따져보자. 섭렵하여 동원할 수 있는 지식의 양과 범위, 사고와 종합에 있어서, 개인적인 편향이나 오류에 빠지지 않고 가장 균형 있는 생각의 길을 택하는 데에 있어서 인공지능을 따라갈 수 있을까? 또 인공지능의 도전에 대한 대책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은 거의 천편일률로 ‘인간만이 발휘할 수 있는 창의성’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 또한 의심스럽다. 인공지능도 인간과 다른 방식이지만 분명히 창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공격으로 제너럴리스트와 전문가 양쪽 다 궁지에 몰렸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대립 구도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다. 정말로 인간 정신활동의 본성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