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학은 강간범에게 학위를 수여한다.” 강렬한 문구의 거대한 현수막과 함께 여학생들이 분노로 가득한 노래를 시작한다. <더 원더> <글로리아 벨> <판타스틱 우먼>을 연출한 세바스티안 렐리오 감독은 2018년 칠레 대학에서 일어난 페미니스트 학생 시위에서 영감을 받아 <라 올라>의 메가폰을 잡았다. 주인공 줄리아(다니엘라 로페스)의 모교에선 교내 여학생에게 성희롱, 성폭력을 행한 남학생들과 교직원을 상대로 강력한 항의 시위가 주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여학생들이 위원회를 조성해 성폭력 피해 사례를 수집하는데 위원회의 일원인 줄리아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줄리아에게 성폭력을 가한 상대는 같은 성악과의 조교였고 혹시 모를 불이익이 두려워 그는 계속해서 증언을 망설인다. 극 중 가해자와 가해자의 보호자들은 성폭력 피해자가 신분을 드러내길 꺼린다는 점을 역이용하려 한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학생들은 붉은 복면을 착용해 익명성을 담보한 채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이끌어낸다. <라 올라>는 뮤지컬 형식을 실험적으로 활용한다. 광장을 메울 만큼의 다수를 활용해 군무를 꾸리고 정갈한 편집 대신 거칠더라도 저항의 에너지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택한다. 자기 경험을 드러내길 꺼려하던 피해자가 다수를 이끄는 활동가로 변모하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묘사됐는데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된 신인 다니엘라 로페스가 이를 무리 없이 소화해 극을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