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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미 기자의 Cannes 최초 리뷰] <거울 No.3>
김소미 2025-05-22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이번에도 수수께끼로 문을 연다. 영화의 오프닝, 젊은 피아니스트 로라(파울라 베어)가 나룻배를 몰고 가는 검은 잠수복 차림의 남자를 바라본다. 마치 낫을 들고 죽음의 강을 건너는 저승사자같다. 머지 않아 로라는 연인과 차를 타고 가던 중 전복 사고를 당한다. 남자는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기이하게도 로라는 온전히 살아남았다. <미러 No.3>는 죽었다 다시 태어난 여자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 사고의 목격자이자 교외에 머무는 중년 부인 베티(바르바라 아우어)가 로라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유사 모녀 관계인 두 여자는 마치 주술에 걸린 것처럼 서로를 받아들인다. 베티의 가족들이 제각기 보이는 반응을 통해 실은 로라가 누군가의 대체제일 수 있다는 뉘앙스가 적층되고, 외딴 집의 비밀을 마주한 로라는 졸업 시험을 치르기 위해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간다.

<거울 No.3>는 페촐트식의 <레베카>(알프레드 히치콕)이면서, 전작 <피닉스> <트랜짓> 등을 통해 반복해온 정체성의 재구성에 관한 드라마이다. 도플갱어적 존재와 오인의 모티프로 형성되는 긴장감은 공동의 역사에 뿌리를 둔 주요 전작들에 비해 일상적 층위에 머무는 한편,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환상 동화식 구조가 선명해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은유의 층위에 충실한 작품으로도 보인다. 의외의 유머를 허락하고 인간 관계의 사사로운 진폭에 집중하는다는 점에서 <어파이어>의 미덕을 잇는 지점도 돋보인다. 상실 이후, 외면 대신 혼란을 수락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심리적 잔상을 조용히 탐색하는 페촐트의 신작은 설명 대신 인상으로, 서사 대신 리듬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배우 파울라 베어가 또 한번 유령과 인간의 경계에 서서 페촐트 영화를 지배하는 신비로운 기운을 내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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