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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석의 R.E.C: 국회의 시간] 국회의 시계는 몇시인가?
글·사진 정윤석 2025-05-29

“긴급 속보입니다. 2차 계엄 시도가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깨진 창틀 너머로 들려오는 앵커의 목소리는 너무나 담담했다.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일을 멈추고 TV 모니터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지난밤 헬기가 도착하고 군인들과 대치한 장소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국회 주변은 평화롭고 고요했다. 군화 자국은 지워졌지만, 깨진 유리 파편은 여전히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햇살이 조각에 반사될 때마다 짧게 반짝였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트라이포드를 펼쳤다.

16:9 화면 비율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초점을 맞추는 손끝이 낯설었다. 처음 들어선 로텐더 홀 내부는 기이할 만큼 대칭적이었다. 좌측은 민주당, 우측은 국민의힘. 각자의 공간은 나뉘어 있었지만 감정의 균열은 오히려 생생했다. 긴급 의총이 열리는 복도, 기자들은 정치인의 입술을 번갈아 바라보며 무언가를 잰 듯이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셔터 음과 타자 소리가 섞이며 기묘한 리듬을 만들었다.

“누구시죠?” “예술가입니다.” “기자 분이세요?” “아닙니다.”

국회 당직자의 멈칫한 표정에 나는 잠시 웃었다.

‘예술가는 국회에 있을 수 없는 존재인가?’ 그의 표정을 살피며 나고야 공항 당시를 떠올렸다. 지진 이후 충전기를 찾아 방황하던 사람들, 초점 나간 스마트폰, 허둥대던 나. “무엇을 찍을지 모를 땐 그냥 같이 허둥대면 된다.” 재난에 익숙한 일본 감독이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새벽부터 이어진 긴급 의총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나타났고, 기자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대통령의 정치인 체포 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곧이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등장하자 JTBC와 MBC 카메라들이 방향을 바꿨다. “대표님, 2차 계엄,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질문은 날카롭지만, 정치인의 대답은 무뎠다. “쉽지 않군.” 녹화 버튼을 누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물결처럼 갈라지는 국회 인파의 흐름 속에서 나는 문득 영화 <신 고질라>의 장면이 떠올랐다. 도쿄만의 바다를 헤치며 들어오는 거대한 괴수, 전문가의 경고를 묵살한 정부, 그리고 늦은 후회. 허구의 재난과 현실 정치 사이, 그 간극은 생각보다 좁았다. 지난밤 계엄군이 다녀간 국회는 하나의 영화 세트처럼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야 6당의 탄핵 소추안 제출이 임박하자, 국회 본관은 임시 재난 대응센터로 변해갔다. <CNN> 리포터가 화면을 점검하고 부서진 출입문을 배경으로 리딩을 시작했다. 24시간 밤샘 방송을 위한 프롬프터와 조명들이 출입구쪽에 설치되었다. 민주당, 진보당, 조국혁신당은 1인 시위를 이어갔고, 전직 의원들은 너도나도 유튜브 생중계를 시작했다.

해질 무렵 국회의사당 계단 앞으로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한 남성은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렀고, 이어 <다시 만난 세상> 후렴구에 “윤석열 탄핵!”을 외치며 슈퍼챗(현금 후원)을 부탁했다. 이제 국회의사당은 기자와 국회의원, 레거시 언론과 개인 방송이 뒤섞인 이슈의 중심이 되었다. 너무 많은 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모두가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참 많이 변했죠.” 촬영 스태프가 웃으며 말했다. “요즘은 유튜버가 대세예요, 감독님.”

자정이 넘어간 시간, 일반인의 모든 출입이 제한된 국회는 적막함이 감돌았다. 나는 프롬프트 의자에 걸쳐 앉아 녹화한 파일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본회의장에서 스마트폰으로 라이브를 시도하다 국회의장에게 제지받았던 의원의 난감한 표정이 찍혀 있었다. 와이파이를 접속하자 ‘민주주의의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한국’이라는 <워싱턴포스트>의 알람 메일이 도착했다.

”국회 실시간”을 검색하자 수십개의 스트리밍 채널들이 올라왔다. 스마트폰 화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줌을 당겼다. 저 멀리 어둑한 국회 담장 밖에서 응원 봉의 불빛들이 뷰파인더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유튜브 설정을 1080p에서 360p로 낮췄다. 화면의 불빛들이 픽셀 단위로 보이기 시작했다. 불빛과 사람들이 뭉개지며 하나의 픽셀로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 소노 시온이 연출한 <희망의 나라>의 엔딩 장면이 떠올랐다. 방사능 위기 속에서도 집을 떠나지 않은 가족들. 과연 희망은 허상일까, 단지 붙잡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들이 희망이었을까?

본회의장 3층 방청석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야당 의원들의 고성이 이어졌고, 여당 의원들은 당당한 얼굴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재석 수 195명. 투표불성립으로 탄핵 소추안이 최종 부결되었다는 국회의장의 발언이 이어졌다. 웃는 사람도 있었고, 눈을 질끈 감은 사람도 있었다. 소추안이 부결된 직후 당직자와 보좌관들이 복도 농성을 시작했다. 민주당측 보좌관들이 “부역자”라고 소리치자 반대편에서 ”빨갱이 죽이자”를 외쳤다.

“부역자!” “빨갱이!” 보좌관들의 고함 사이로 혼자 서 있던 고질라와 눈이 마주쳤다. 구호 리듬에 맞춰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나를 쳐다봤다. 국회 경호원의 도움을 받아 복도를 빠져나오던 추경호 원내대표와 고질라가 마주쳤다. 두려움에 질린 그의 눈빛을 보며 ‘이걸 찍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저녁 10시20분. 국회 2층 엘리베이터 시계 분침이 21분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눈을 깜박이니 계엄군의 진입을 막기 위해 쌓아놨던 바리케이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부서진 문패와 차단막 사이로, 얼기설기 쌓여 있는 책상 위에는 소화기 분말 가루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가루들이 한숨을 내쉬며 시계의 분침 사이로 스며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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