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이 죽을 때 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안쓰러워서 우는 걸까, 우리 스스로가 안쓰러워서 우는 걸까?” 학교에 제출한 에세이에서 후키는 한 소녀의 장례식을 지켜본다. 상주 자리에 선 부모님을 보며 후키는 그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본인의 판타지 에세이에 전술했듯 11살의 후키는 종종 죽음을 상상한다. 나아가 상실을 겪은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수시로 영혼을 불러오는 주술을 행해보고 텔레파시에 심취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암 환자인 후키의 아버지에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고 그런 그를 간호하고 생계를 잇느라 어머니는 후키를 돌볼 여유가 없다. 고요한 집에서 아이는 자주 외로움을 곱씹는다. 제78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르누아르>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자신이 천착하는 죽음과 연대라는 주제를 공고히 한다. 데뷔작 <플랜75>을 통해 70대 여성의 시선에서 노년의 생과 사에 주목한 데 이어 <르누아르>에선 11살 소녀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예견된 이별 앞에 데려다놓는다. 후키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무감해 보일 때가 많은데 그렇기에 죽음 전후의 상황을 긴밀히 채집하는 상황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후키의 과거인지 상상인지 불분명한 신들이 아이의 현실 속에 자주 틈입하고 그 대부분이 아버지와의 행복했던 기억이다. 후키와 부모님의 내면에 관한 내밀한 묘사들은 <르누아르>가 성인이 된 후키의 회상이라는 인상을 안긴다. 11살 소녀가 상상조차 불가한 아버지의 부재에 관해 11살의 소녀가 이해하려는 시도에는 천진함만큼이나 간절함이 녹아들어있다. “10대, 20대 초부터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버라이어티>)고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이야기를 전보다 더 안정적인 리듬의 작품으로 완성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