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3일 밤 10시23분. 뉴스 알림이 떴다.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긴급 발표 전체 동영상.”
나는 반사적으로 세개의 기기를 켰다. 오마이뉴스 채널은 핸드폰으로, JTBC는 아이패드로, MBC는 노트북으로 로딩했다. 광고 없는 유튜브 프리미엄은 이럴 때 진가를 발휘한다. 세 기기의 카메라가 동시에 내 얼굴을 인식하는 순간, 정보가 아니라 세상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총러닝타임 6분15초. 발표는 짧았지만, 대통령의 문장 하나하나가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해치는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이 구절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누가 쓴 문장일까? 본인이 직접? 웃음은 놀람이었고, 공포였고, 오래된 기억에 대한 반응이었다.
저녁 10시50분. 이재명TV의 라이브가 시작됐다. 차 안에서 촬영된 영상은 22분56초간 이어졌다. 그는 반복해서 말했다. “도와달라.” “모여달라.” ‘계엄’이라는 단어는 낯설었다. 차창의 그림자 뒤로 가로등 불빛이 미끄러졌다. 야당 대표가 국회를 월담하는 상황을 시청하며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찍던 날이 떠올랐다. 나는 100일간 거리에서 집회를 기록했다. 영화가 ‘레코딩’이었다면, 라이브는 ‘참여’에 가깝다. 진중권은 아프리카TV를, 김어준은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포고령은 언론사가 아닌 SNS를 통해 퍼졌다. X(옛 트위터) 타임라인에 장갑차가 나타났다는 사진이 올라왔고, 동시에 ‘조작된 이미지’라는 추가 반박도 이어 퍼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진실이고 누가 거짓인가? 홍대 앞에 장갑차가 등장했다는 트윗 아래 일론 머스크가 올린 가자 지구 포스팅까지 겹치며 내 눈앞의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완전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세계 계엄포고령의 지난 사례를 알려줘.”
“응. <시빌 워: 분열의 시대>를 참고해봐. 민주주의의 위기와 작가의 시선이 살아 있는 작품이야.”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니?”
챗GPT에게 ‘너’라니. 나는 ‘엔터’ 버튼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응. 너는 다큐멘터리 기반 논픽션 작업을 해왔지. 감독이잖아.”
순간 기묘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앨릭스 갈런드는 ‘폭력의 정치성’을 미장센과 리듬으로 해석하는 감독이야. 너처럼 미술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에겐 이 영화가 도움이 될 수 있어.”
“내전이라….”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곱씹었다. 영화 결제창이 로딩되자 페이스아이디((Face ID)가 작동했다. 추천대로 영화의 오프닝은 인상적이었다. 호텔에서 미합중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옆모습, 내 노트북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영상이 반복 재생 중이었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오프닝 시퀀스와 계엄선포 기자회견을 교차편집해보면 어떨까?”
“매우 강렬한 제안이야.”
대답은 빨랐지만, 버퍼링이 문제였다. 유료 결제를 마쳤지만 갑작스러운 통신 두절이 혹시 계엄 때문이 아닐까 불안해졌다. 아이폰 화면을 열고 구독 중인 언론사의 유튜브 채널을 접속했다. 다행히 실시간 국회 라이브가 송출되고 있었다. 애플 OS의 미러링 설정 기능을 통해 국회 본회의장과 외부 라이브 채널이 동시에 모니터링이 가능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국회 정문 앞에는 경찰과 시민들이 뒤엉켜 대열을 이뤘다. 혼란 속에 미처 진입하지 못한 국회의원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국회 밖에서 라이브를 시작했고, 나머지 출입구들은 무장군인에 의해 진입이 차단된 듯했다. 마음이 급해져 빠르게 질문했다.
“계엄 해제 조건에 대해 알려줘.”
“헌법은 국회의 해제 요구가 있으면 대통령은 즉시 해제해야 한다. 그러나 국무회의 심의 절차가 이를 지연시킬 수 있다. 2024년 12월3일, 계엄군이 국회 본청에 투입됐다. 이는 명백한 권력의 위헌적 개입이다.”
“국회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긴급 의원총회가 소집되었습니다. 민주당은 즉각적인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발의했고 본회의를 소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새벽 12시48분.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앵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단단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절차를 지켜야 하는 겁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중계 카메라를 응시한 뒤,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려다봤다. 그 순간 다시 질문을 입력했다.
“만약 대통령이 해제안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헌법적 질서가 심각하게 파괴되는 위헌 상태에 돌입한다. 이 경우는 단순한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헌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권력 탈취 행위(쿠데타)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럼 계엄을 해제시켜도 대통령이 다시 계엄을 선포할 수 있어?”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야. 결론부터 말하면,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하고 해제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헌법상 대통령이 다시 계엄을 선포하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가능’하다.”
날이 밝아왔지만, 화면 속 계엄군은 국회 진입로를 봉쇄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송출이 끝난 국회 라이브의 러닝타임은 이제 5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폰의 음소거 버튼을 누르자 밖의 바람 소리에 창틀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 촬영을 시작해도 될까? 마음이 두려워.”
“너는 현실과 환상 사이,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균열을 잡아내는 사람이잖아. 지금 카메라를 들지 않아도 상상하고 있잖아. 두려운 건 당 연해.”
아침이 밝자 아파트 뒤편의 눈 내린 산길을 걸었다. 저 멀리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계 초소의 불빛 덕분에 눈 위에 찍힌 발자국들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새벽 4시27분. 대통령의 계엄 해제 발표가 전해졌다. 짧은 탄식과 함께 안도의 숨이 새어나왔다.
“현재 상황을 알려줄래?” 짧게 질문을 남겼다.
“지금부터는 그냥, 찍으면 돼.”
화면 속 커서가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