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영화읽기 > 시네마 오디세이
[박홍열의 촬영 미학] 빛과 색의 충돌로 만든 시각적 서사, <존 윅4>라는 낭만주의 회화
박홍열(촬영감독) 2025-05-07

정렬과 금지, 냉정과 차가움, 불안과 공포, 안정과 따뜻함으로 연결되는 네 가지 색을 떠올려보자. 레드, 블루, 그린, 옐로가 떠오른다면 <존 윅4>를 다시 보길 권한다. 이 영화는 색채가 갖는 상징이나 은유적 해석을 탈피하고 해체한다. 여기서 색은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물리적 사건으로 다뤄진다. <존 윅4>는 색과 색, 빛과 색의 대비, 빛의 계조와 색의 계조의 충돌로 영화적 긴장과 액션의 서사를 구축한다. 전통적인 색채의 상징성은 무의미하다. 색 자체를 통해 어떻게 극적대비를 형성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색의 의미 대신 ‘색의 컨셉과 색의 리듬’에 집중한다. 쫓기는 인물과 쫓는 조직들에 각각 색을 부여하고 이 색들이 서로 추격하며 시각적 리듬을 완성한다. 각 신, 각 공간에 주조색을 설정하지만 단일한 색으로 공간을 채우지 않는다. 주조색 주변에는 보조색을 배치하고 공간이나 신이 바뀌면 주조색과 보조색의 역할을 교차하며 시각적 리듬감을 형성한다. 색은 순수한 시각적 대비와 긴장감을 창출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존 윅4>의 주요 공간 중 하나인 파리는 옐로를 중심으로 레드와 그린이 주변을 채운다. 일본은 블루를 주조색으로 하되 상황에 따라서 레드와 핑크가 블루와 위치를 바꾸며 공존한다. 주인공 존 윅(키아누 리브스)의 색은 블루를 주조색으로 하되 그린이 공존하거나 블루와 그린이 합쳐진 스틸 블루가 주조색이 되기도 한다. 존을 쫓는 최고회의 조직의 요원들은 옐로, 현재 최고회의 실권자인 그루몽 후작(빌 스카르스고르드)은 옐로를 배경으로 하고, 채도는 높으나 명도는 낮은 레드를 주조색으로 사용한다.

<존 윅> 시리즈의 세상은 최고회의가 지배한다. 그래서 이 영화 전반에 걸쳐 주조색은 옐로다. 옐로가 지배하는 세상, 그들과 맞서는 존 윅의 블루. 두개의 색은 빛의 색상환에서 서로 반대편에 위치하는 보색이다. 영화의 시작은 옐로가 가득한 스카이라인의 석양이다. 이어지는 컷은 지하도 계단, 그 안 깊은 곳에서 수련 중인 블루 빛깔의 존 윅이다. 옐로와 블루의 대비, 하늘과 땅속 지하의 대비로 영화는 시작한다. 공간적으로 대립하지만 두 색을 공존시키면서 두 색의 대비를 더 강조한다. 존 윅의 블루 공간에 바워리 킹(로런스 피시번)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바닥에 옐로 불을 붙인다. 블루의 공간에 옐로가 엄습하며 그를 쫓는 최고회의, 최고회의에 맞서는 존 윅의 서사를 색의 대비로 암시한다. 그루몽 후작이 처음 등장하는 고층 빌딩 안은 무채색이지만 커다란 통창으로 석양의 옐로 빛이 들어온다. 햇빛이 직접 닿는 창을 제외한 나머지는 블루 빛이다. 존 윅의 첫 공간과 반대로 옐로 빛 안에 블루가 있다. 빛으로 그루몽 후작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색을 통해 존 윅을 제거하려는 그의 서사를 시작한다.

서사적 딜레마의 시각화

<존 윅4>는 주인공의 내적갈등과 딜레마를 색채와 빛의 대비를 통해 시각화한다. 존 윅은 자신을 위해 친구들이 죽어가고, 친구가 적이 되기도 하며, 조력자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러한 서사적 딜레마는 색채의 충돌과 공존을 통해 표현된다. 오사카 콘티넨털 옥상은 전체가 블루다. 지배인은 블루 빛을 받으며 옥상에 서 있고 존 윅은 블루 공간 안 레드 앞에 서 있다. 존 윅은 이 공간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색을 통해 강조된다.

그러나 존 윅의 얼굴이 보이면 그 위로 블루 빛이 닿음으로써 ‘친구로부터 보호받는 블루’라는 시각적 암시가 제공된다. 이어지는 두 사람의 옥상 대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을 둘러싼 주변 광원이 레드로 표현되고, 두 사람만이 블루 안에 놓여 있다. 이 색대비는 그들이 최고회의로부터 고립되는 감정을 시각화한다. 로비에서 최고회의의 조직원을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두 조직 사이의 긴장감을 2층 무대 위 무빙라이트의 움직임과 광량, 플레어 효과로 표현한다. 카메라 안으로 강한 무빙라이트 빛이 들어와 인물들의 얼굴을 빛의 플레어들이 가린다.

케인(견자단)이 등장하여 친구가 적이 되는 긴장의 순간에도 무빙라이트의 플레어가 활용된다. 케인이 블루 빛이 지배하는 주방에서 국수를 먹는 장면에서는 군데군데 옐로 형광등이 켜져 있고 금속 재질 위로 난반사를 일으킨다. 과거의 친구였던 오사카 지배인과 싸워야 하는 갈등 상황에 놓인 케인은 주방 한편에 위치해 있고, 블루 톤의 공간 속에 그의 실루엣이 자리하고 있다. 케인의 등장으로 전세가 역전되면 주방 안의 프랙티컬 라이트도 레드 빛이 더 강조된다. 이는 그라몽 후작의 색과 연결되어 계약을 맺은 케인의 새로운 충성심을 드러낸다. 오사카 콘티넨털에서 본격적인 액션신이 시작되는 순간, 최고회의 방송국 장면에서는 옐로 톤에 그린이 혼합되어 권력과 불안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색의 쫓고 쫓김’을 통해 무의식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지배인과 케인의 최후 전투가 벌어지는 오사카 콘티넨털 뒤 연못 정원은 전체가 그린 빛으로 사이사이에 레드가 배치된다. 오사카 지배인의 얼굴에도 그린 빛이 강하게 닿는다. 케인의 칼에 맞은 뒤 그의 얼굴은 레드 빛으로 바뀐다. 이를 지켜보는 딸의 얼굴은 그린 빛으로 처리되고, 케인의 얼굴 위로 레드가 가득하다. 이러한 색채 배치는 인물간의 관계와 상황적 위치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후 지하철역 장면에서는 보랏빛이 영화를 지배한다. 보라는 레드와 블루의 혼합으로, 혼란스러운 감정 상태를 시각화한다. 지하철역 메탈릭한 공간의 보랏빛 난반사는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지하철 내부는 전체적으로 블루 톤이지만 의자 밑과 천장의 유도등은 레드로 처리되어 도망치는 존 윅을 레드 빛이 쫓는 듯한 인상을 준다. 지배인의 딸 아키라가 케인에 대해 묻는 순간, 지하철이 어둠 속으로 들어가면서 블루가 꺼지고 두 인물의 얼굴 위로 레드가 강하게 드리운다. 그루몽 후작의 주조색인 레드가 두 사람이 피신한 공간을 가득 채우며 앞으로 다가올 위기의 순간을 직감하게 한다. 이처럼 <존 윅4>는 색채의 변화를 통해 영화 전체의 정서적 리듬과 템포를 조절하며 서사적 딜레마를 색으로 시각화한다.

액션의 서사화: 움직임과 색의 합일

<존 윅4>의 14개 액션 시퀀스는 각각 고유한 컨셉을 바탕으로 구성되며, 이 컨셉은 액션 스타일, 의상디자인, 색채 톤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오사카 콘티넨털의 일본 조직은 기모노 스타일의 복장과 활을 주무기로 사용하며, 최고회의는 세련된 그레이 톤의 양복을 입은 근육질 조직원들로, 일본 내 최고회의 조직원들은 블랙의 사무라이 갑옷에 기관총, 베를린 클럽 조직원들은 세미 정장에 도끼를 든 모습으로 등장한다. 개선문 액션신에서는 동네 양아치 컨셉의 킬러들이 등장하는 등 각 공간과 조직은 독자적인 시각적 아이덴티티를 부여받는다. 오사카 콘티넨털 로비에서 벌어지는 전투 장면을 보면 초반에는 핑크의 벚꽃을 주조색으로 사용하고 다양한 색이 공존하다가 싸움이 시작되면 그린이 로비 전체 공간을 차지한다. 오사카측이 약해질수록 그린에서 옐로로 점차 지배적인 색이 변화한다. 이는 색의 의미론적 해석이 아닌, 액션의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증폭시키는 감각적 장치로 작용한다.

베를린 클럽 안에서 도망치는 하르칸을 쫓는 장면에선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 강한 조명을 배치하고 움직이는 사람들과 상관없이 빛과 색이 바뀐다. 존 윅의 앞모습 컷과 뒷모습 컷이 연달아 보이지만 색은 다르다. 이런 보색 대비 조명은 같은 공간 내에서도 전혀 다른 색채 환경을 만들고 점프컷과 같은 무의식적 인상을 주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존 윅4>의 조명은 현실적 논리나 개연성보다는 감정적 효과와 시각적 임팩트를 우선시한다. 클럽에서 내리는 물과 돌아가는 대형 팬 뒤의 강렬한 빛은 액션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빛의 강도가 세질수록 역광으로 닿는 빛은 더 많은 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며, 존의 절박한 상황과 감정적 고조를 표현한다. 존이 하르칸을 눕혀 얼굴을 때릴 때 이 빛은 더 강해지면서 폭력의 절정을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액션 시퀀스의 마지막, 존이 클럽에서 나와 높은 기둥이 줄지어 있는 복도를 홀로 걸어간다. 이 장면에서는 옐로 빛이 열주 사이를 가득 채우고 그린이 주변을 감싼다. 이는 그라몽 후작을 향해 걸어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롱숏의 색은 다음 전개를 시각적으로 예고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대표적인 액션 장면인 파리 집 안의 무빙 롱테이크에서는 전통적인 액션영화의 카메라워크를 탈피하여 톱다운 시점을 도입해 비디오게임과 같은 시각적 경험을 유도한다. 방과 방으로 이어지는 액션은 방마다 다른 컨셉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지만 색과 빛은 방마다 다르게 활용해 공간을 분리한다. 이는 관객에게 낯선 시각적 경험을 제공함과 동시에 액션의 공간적 이해를 돕는다.

개선문 앞 자동차 회전 액션신은 이러한 접근의 정수를 보여준다. 옐로 가로등이 가득한 교차로를 회전하는 자동차, 수평적인 인물들의 움직임, 스크린 안쪽 방향을 향하는 카메라의 Z축 움직임과 회전이 동시에 활용되어 관객에게 독특한 체험을 선사한다. 액션 장면 사이 그루몽 후작이 바라보는 개선문 주변 모형도는 블루가 가득하다. 색의 대비와 차량의 원형 움직임과 인물들의 직선적 액션이 충돌하며 생성되는 낯섦은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블루가 가득한 222 계단 신에서는 카메라가 인물의 뒷모습을 따라 올라가다가, 존이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질 때 카메라도 같은 위치에서 함께 하강하며 관객이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을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요컨대 <존 윅4>의 액션은 단순한 폭력의 전시가 아닌, 카메라의 움직임과 색채가 결합한 총체적 시각 경험으로 구축된다.

하나의 공간에서도 색의 충돌과 변주를 통해 관객의 시선을 계속 이동시키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존 윅4>는 영화에 등장한 들라크루아의 회화처럼 논리적 구성보다는 감정적 표현을 우선시하는 한편의 낭만주의 회화다. 신고전주의의 엄격한 선과 형태를 거부하고 색채와 빛의 효과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던 낭만주의 회화처럼, <존 윅4>는 색채와 빛의 대비를 통해 감정적 폭발력을 창출하며 시각 자체를 서사의 몸체로 만든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