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은 어떻게 멀티플레이어의 길을 걷게 됐는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중학생 때 집 근처 비디오 가게에 출입하면서 영화의 세계에 푹 빠졌다. 웃음과 울음의 감동을 주는 배우를 동경하면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배우가 된 뒤 훗날 매니지먼트사를 차린 건 협상과 재계약에 들이는 에너지를 연기에 쓰고 싶어서였다. 촬영, 조명 등의 다른 파트와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호기심이 강해지면서 제작에 관심이 생겼고 전국의 작은 극장이 지켜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유튜브를 하게 됐다. 돌아보면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 같다.”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하면서 혼란스럽고 흔들릴 때도 많다는 솔직한 고백이 뒤따르자 이번엔 응원과 공감의 박수가 장내를 휘감았다.
힘들어도 그 모든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묻자 이제훈은 “좋아하는 마음. 좋은 이야기를 읽고 볼 때마다 여전히 황홀하고 저런 작품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한다”라며 주저 없이 답변했다.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지 자신에게 의문을 품는 창작자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A4 용지에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어느 날에 아주 비참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렇지만 인생은 길고 하루아침에 되는 건 없다고 믿는다. 그런 날들이 쌓여서 어느 날 영감을 받아 순식간에 트리트먼트 한편을 완성하는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다.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길 바란다. 여러분 모두 한 스텝, 한 스텝 잘 밟아나가고 있다.”
이제훈이 선택받는 시나리오를 쓰는 노하우를 전달하는 순간에 멘티들의 집중도가 한층 높아졌다. “배우, 감독, 제작자의 입장에서 글을 써봤으면 좋겠다. 예컨대 배우로서 시나리오를 읽을 때면 등장인물들의 말투가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캐릭터에 좀더 세밀하게 접근한다면 매력적인 글이 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내 글을 내가 연출한다고 했을 때 어떠한 그림이 그려지는지, 그 그림이 내가 의도한 바가 맞는지 꼭 점검하길 바란다. 그럴수록 시나리오는 더 선명해진다.”
질의응답 시간에 멀티플레이어로 불리는 데 따른 고민과 걱정은 없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자 이제훈은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라며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는 메시지를 이어나갔다. “이것저것 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될 것 같은 마음이 들 수 있지만 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라면 기꺼이 도전해보기를 권한다. 무슨 일을 몇개나 하든 본질은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고 어느 분야든 꾸준히 하면 원하는 만큼의 능력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여러분이 쓴 좋은 이야기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나도 계속하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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