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김화진 이전에 민음사 유튜브 채널로 유명세를 탄 편집자 김화진이 알려졌다. 스스로를 소설가로 정체화한 순간은 언제쯤이었나.
= 등단한 것, 소설가가 된 것.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걸 납득하는 건 다른 일이었다. 누가 나를 소설가로 불러줄 때 스스로 머쓱해하지 않았으면 싶어서 나는 소설가가 맞다고, 그것을 객관적인 현상으로서 받아들이자고 한동안 노력했다. (웃음) 첫책 <나주에 대하여>가 나올 때까지도 내 책이 아닌 것만 같아서 정영수 편집자가 왜 이렇게 안 좋아하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러고보면 나는 언제나 모든 반응이 조금 늦되다. 빨리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면 어쩌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이게 맞나, 괜찮은가, 안 괜찮은 것 같은데 망설이는 동안 쌓이는 찌꺼기들로 글을 쓰는 것 같다.
- 국문학을 전공하고 편집자가 됐다. 회사를 다니면서 꾸준히 소설을 썼는데 체력을 아껴가며 글 쓰는 과정을 지속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 신입 땐 너무 긴장해서 회사 다니는 일만으로도 녹초가 됐다. 습작을 쉰 적은 없지만 입사 후 한동안은 진도를 못 내다가 2년쯤 지나서야 정기적으로 쓰게 됐다. 퇴근 후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많은 것들의 증거다. 메모해둔 것이 제법 있고, 거기서부터 이어서 쓸 수 있을 것 같고, 결정적으로 집에 가서 눕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그러니 소설을 쓴다는 게 좋을 수밖에 없다. 오늘 쓸지 말지는 주로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결정한다. 집 근처 카페 아무 데나 들어가서 쓰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 소설을 쓴 날에 기분이 좋아지는 건 확실하다.
- 첫 장편소설 <동경>은 인형 리페인팅이라는 일을 중심으로 관계 맺은 세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다. 1부에서는 세 인물(아름, 해든, 민아) 각자의 1인칭 시점으로 마음의 세밀한 결을 서술했다.
= 인물들 각자의 뿌리와 깊이를 세워두어야 관계의 삼각형이 제대로 설 것 같았다. 관계 속의 한 사람이기 이전에 각 개인의 모습은 이러하다고, 그러니까 어쩌면 전혀 친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2부에서 3인칭으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이들이 하나의 시간 속에서 흘러가면서 때로 겹치고 또 겹치지 않는 모습을.
- 서로에게 낱낱이 밝히지 않는 은밀한 사정들을 1부에서 먼저 서술한 다음, 2부에서 관계의 구도를 떨어뜨려놓고 바라본다. 어떤 효과를 기대했나. 각 챕터가 계절의 흐름을 담고 있기도 해서 소설집 전체가 미시적인 감정과 거시적인 시간의 흐름을 넘나든다는 느낌을 준다.
= 소설 속에서 인물과 인물이 대화할 때는 사실 말하지 않는 것이 훨씬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인물의 내면 서술을 다 읽고 대화를 접하기 때문에 두 대화 상대가 훨씬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단편에선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가 분량상 벅찬데, 장편소설에선 좀더 접근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아가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얼마나 많이 생각하는지, 해든이 아빠로부터 받은 영향은 얼마만큼인지 1부의 1인칭 서술에서 충분히 적어둔 뒤에, 2부에서는 그들 각자가 자신의 깊이를 다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차이를 하나의 흐름 속에서 확실히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서로 동경하는 친구들이라면 다 얘기하지 않아도 그것대로 좋은 관계일 수 있다고, 혹은 어쩐지 다 알 것 같아도 모른 척해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이 나이대 우정의 좋은 면이다.
- 소설집의 제목이 된 ‘동경’의 뜻을 질문하고 싶다. 이번 소설을 쓰면서 동경한다는 감정을 어떻게 해석했나.
= 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산다. 그 생각을 세 인물에게 나눈 것이 아름, 해든, 민아다. 세명 모두 이쪽저쪽의 상대를 보면서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혹은 ‘저 사람처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조금씩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하며 썼다. 누군가에게 어떤 점이 있어서 너무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 마음과 그 마음을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찬찬히 생각한 소설이었다.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서 동경이란 단어를 한번도 제대로 의식한 적 없었는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도 발견해나갔다.
- 김화진의 소설에서 친구 되기, 혹은 우정은 왜 이다지도 중요할까.
= 우정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해서? 물론 나는 살면서 모든 인간관계가 어려웠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할 수 없는 말이 많은 관계가 친구였다. 당신의 어떤 점이 싫다고, 부모에게나 애인에게는 말해버리게 되지 않나. 친구에겐 그게 안됐다. 친구에겐 어디까지 말해야 하고 말할 수 있는지 그 어려움을 탐구하는 게 항상 흥미로운 주제였다. 일로 만난 관계, 동료로 시작한 관계가 친구로 접어드는 통로가 신비롭기도 하다. 원래 친구였던 무리가 쪼개지는 과정 같은 것들도. 친구는 내게 그 기한과 깊이가 너무나 다채로워서 계속해서 쓸 게 많은 주제다.
- 작가 김화진은 현실보다 인간관계의 더 나은 가능성을 소설로서 모색한다고 할 수 있을까.
= 적어도 나의 현실에 비교하자면 그렇지 않을까. 소설의 기저에는 결국 내가 있다. 이런 식으로 굴어도 나랑 친구해줄까, 저렇게 행동해도 계속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의심을 실험해본다. 똑같이 행동해도 그게 누구냐에 따라 미움의 정도와 너그러움이 달라지는 것같이 희한한 마음들을 소설 안에서 적용해보는 것이 재밌다.
- 자신의 내면만큼 타인의 성향과 심정에 대해 골똘히 탐구하는 문장들을 따라가는 것이 김화진 소설을 읽는 기쁨 중 하나다. 바꿔 말하면 자의식에만 침잠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식적인 환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 자기가 자기를 몰라서 괴로워하고 타인을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과정조차 결국은 다 자기가 좋아서 그러고 있는 거 아닐까. ‘내가 나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조차 그 안에 너무나 소중한 자기가 들어 있는 거라서. 그래도 다른 사람을 거울 삼고 싶다는 마음, 반사된 것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확실히 자폐적이지 않다고는 생각한다. 나 자신의 기원에서 찾자면… 내가 눈치를 많이 보고 살아와서 그럴까? 어릴 때 학교에서 줄을 서면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맞더라도 쟤한테 줄을 맞춰야 하나 생각하는 어린이였다. 그런 걸 고민하는 애와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애는 분명 다르겠지. 나는 말하자면 전자인 어린이로 태어나 안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혼종일 테고.
- 소설의 소재와 장면들, 문장들을 수집하는 평소의 방식이 궁금하다.
= 평소엔 그저 이 시간에 단편소설 하나라도 완성하면 참 좋겠지, 하면서 누워 있다. 생각만 품은 채로 그저 돌아다니거나 뭘 읽기도 하고. 소설 시작 부분이 나열되어 있는 파일들이 잔뜩 모인 폴더가 있다. 여러 덩어리들을 직관적으로 그때그때 모아두고 서로 이어지는 것들끼리 분류해둔다. 서로 합쳐질 수 있겠다 싶은 것들끼리 하루 날 잡아 길게 들여다보게 날 무언가 쓰게 되는 셈이다. 여행을 거의 하지 않다가 최근 들어 조금씩 다른 장소, 풍경에 가 있어보려고 하는데 그때 본 인상적인 것들을 메모로 남기기도 한다. 최근엔 무주산골영화제에 갔다가 들른 테마랜드에 수달이 있다고 썼다. (웃음) 무언가 처음 알게 된 신기함, 인생을 살면서 내가 모르는 게 아직 이토록 많다는 놀라움, 그 밖의 솟구치는 감정들을 적는다.
- 영화기자의 사족을 붙이자면, 소설가 김화진을 제천, 전주, 무주 등 영화제에서 마주친 것만 여럿이다.
= 영화제 탐방도 역시 늦된 편이다. 최근 들어서야 조금 멀리 가보자고, 환기를 해보자고 생각하면서 여행을 다닌다. 얼마 전의 무주는 체육관에서 영화 보는 일이, 그 흰 플라스틱 의자를 보는 것이 참 좋았다. 영화제 여정은 단편소설이 되기에 훌륭한 조건들을 갖췄다. 권여선 작가님의 <삼인행> 같은 소설처럼. 그래서 늘 영화제로 떠날 때 이번엔 소설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결국 ‘아, 이번에도 잘 놀았다!’ 하고 만다.
- 앞으로 새롭게 쓰고 싶은 화두가 있을까.= 누구를 미워해보는 소설도 써보고 싶다. 다각의 관계 사이에서 특별히 밉고 싫은 애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동경>을 출간하고 도서전을 지나면서 유독 정신이 없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최근 들어 지독한 미움이나 싫음에 대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이루는 삼각형은 각자가 선 자리에 따라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두 점이 유독 가깝고 한 점이 비교적 멀 때는 그 모양이 변했으나, 삼각형은 삼각형이었다.” (<동경>, 200쪽)
지금의 작가 자신과 가장 닮은 인물은.“대체로 최신 발표작의 인물이 지금의 나와 가깝다고 생각한다. <동경>의 아름은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꼭 나 같다. 무언가 좋다고 했다가, 안 좋다고 했다가 이래도 될까 하다가 안될 것 같다고 하면서 자꾸만 스스로 뒤집는 사람. 매번 갸우뚱거리면서 사고의 흐름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이 가장 나답다고 느낀다. 글이라는 게 결국 쓰는 사람의 사고의 흐름대로 비슷하게 구조되기 마련인 것 같다. 그래서 바람이 있다면 정반합을 추구하지 않고, 나중에 쾅 하고 무언가 틀렸음을 깨닫게 되더라도 일단 의심 없이 치고 나가는 사유와 문장의 소설을 써보고 싶다.”
요즘 소설 쓰기에 영감을 주는 존재는.“탁구를 치고 있다. 그동안 취미란 게 없는 삶을 살았는데 친구이자 동료인 정기현 편집자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둘이 가니까 잘 안 빠지게 된다. 가장 좋은 건 운동을 하면 잠시 정신을 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끼고 있다는 것. 아직 초보지만 소설에 한 장면쯤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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