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1년차에 <경이로운 소문>으로 전에 없던 액션 신을 소화 중이다.
=다른 카운터들에 비하면 액션 신이 많지는 않은데, 달리는 신은 많은 편이다. 너무 잘하고 싶고 욕심도 나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많이 느낀다. 아무래도 출산 후라 체력이 더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훈련이 더 필요했나 싶다. 평소에 헬스도 다니고 필라테스도 했는데, 한번 쫙 달리고 나면 근육이 놀란다. (웃음)
-그래도 매옥에겐 치유 능력이 있다. (웃음) 액션과 더불어 절절한 감정 연기를 요하는 부분이다. CG 처리도 염두에 두고 움직이나.
=어느 때보다 염두에 둔다. 판타지 장르가 어려운 게, 아무것도 없는데 무언가 진짜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하더라. 특히 치유 신을 찍을 때 내 연기가 진짜가 아니라 흉내내는 것으로만 보이면 우스워지겠구나 싶어 절절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의사는 아니어도 누군가가 낫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며 연기했다.
-9화에서 크게 다친 소문(조병규)을 고쳐주며 <엄마 손은 약손>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그 간절함이 부각됐다.
=혹시 노래 부르는 게 웃기진 않았나. 웹툰에서는 <아! 옛날이여>를 부르고 드라마 대본에선 노래가 삭제됐는데 기자가 보기엔 어땠나.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서로를 위해 부를 법한 노래라 생각한다.
=생사를 오가는 위험한 상황인데 노래를 부르면 튈까봐 고민이 많았다. 이런저런 노래를 많이 찾다 <엄마 손은 약손>으로 감독님에게 제안을 드리면서도 너무 ‘착붙’이라 별로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감독님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셔서 결국 부르게 되었다.
-그 장면에서 매옥이 소문의 상처에 스카프를 동여매주지 않나. 초반부터 매옥의 패션 아이템으로 쓰인 스카프가 매옥의 초능력과 연결되면서 더 눈에 들어 오더라. 다양한 디자인의 스카프는 어떻게 준비했나.
=처음에는 중년 여성이 입는 등산복 차림의 일환으로 손수건을 두르겠거니 생각했는데 촬영에 나서면서 실제로 손수건을 매는 순간, 이게 치유 과정에 이용될 수 있겠다는 직감이 확 들었다. 치유의 상징으로 계속 가져가면 좋겠다고 해서 엄청나게 많은 손수건을 준비했다. 극이 밝은 분위기일 때는 밝은색을, 자고 일어났을 때는 가제수건을 매치하고 있다. 9화 같은 경우 피 색이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연한 톤으로 신경 써봤다.
-스카프는 매옥이를 넘어 염혜란 배우의 시그니처가 된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에서 어린 지영을 버스에서 도왔던 ‘과거 스카프 여자’ 역도 떠오르고.
=와, <82년생 김지영>은 생각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배역 명도 그랬다.
-언제든 누군가를 위해 손수건을 건네줄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이 바로 매옥이다. 신체 능력과 공감 능력 모두 훌륭한 매옥의 또 다른 힘이 바로 동료들의 활약을 열렬히 응원하고 칭찬하는, 그러니까 ‘알아봐주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들으니 너무 좋은 능력이다. (웃음) 카운터 한명 한명을 떠올렸을 때 매옥이 ‘엄마 카운터’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웹툰을 그린장이 작가님도 네 사람이 가족처럼 보이기를 원했다고 하더라. 엄마 같다는 말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긴 하지만 없으면 뭔가 허전한, ‘이 사람이 우리의 구심점이었구나’ 싶은 따뜻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좋은 어른으로 보일 수 있는 기성세대이고 싶었다. 꼰대 같지 않은, 어린 세대와 함께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 ‘워너비’ 기성세대가 현장에서는 (유)준상 선배님이다. 우리 팀의 구심점으로서 모두를 포용해주신다.
-시청자들은 댓글에 염혜란 배우의 옛 일터도 소환한다. 드라마 <도깨비>의 은탁 이모, <쌍갑포차>의 염라대왕을 언급하며 저승과의 인연을 기억하더라.
=당시에는 그저 판타지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었을 뿐 내가 실질적으로 어떤 능력을 크게 발휘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요즘에는 세계관이라는 표현을 쓴다던데, 사실 그 세계관 속에서 하는 대사들이 한 꺼풀만 벗겨도 말이 안되지 않나. 현실에 없는 단어들도 많이 쓰고. 배우로서도 그런 대사들이 낯설 때가 많은데 어떻게 시청자를 설득해야 할지 늘 고민스럽다. 할리우드에서 히어로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진짜 잘하는 배우들이라는 걸 절감했다.
-원래 이런 장르에 친숙하지 않은 편인가.
=현실에 닿아 있는 작품들을 많이 보지 현실에 없는 이야기는 잘 보지 않는다. 그래서 <경이로운 소문>이 엄청난 도전이었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나 지금 되게 새로운 거 하고 있구나’ 되새겼다.
-그럼에도 판타지와 리얼리티를 열심히 오가며 연기 중인데, 극의 세계관이나 장르에 따라 배우로서 마음가짐에 차이가 생기나.
=판타지 장르일수록 연출과 촬영을 비롯한 수많은 요소가 서로 의지하고 합을 맞춰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 모든 것이 그럴듯하고 그럴싸하게 보이려면 내 연기 외에 엄청난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으로 KBS 연기대상 조연상을 받으며 시작한 2020년에 <야구소녀> <이웃사촌> 개봉과 더불어 드라마 <쌍갑포차> <슬기로운 의사생활> <경이로운 소문>에서 활약했다. 2021년에도 <새해전야> <빛과 철> <시민덕희> <태일이> 같은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다작 비결이 궁금하다.
=지난해 상반기는 육아만 하면서 쉬었는데 찍어놓은 게 많다보니 뭐가 많이 나왔다. 비결은, 거절을 안 해서? (웃음) 물론 어쩔 수 없이 거절하는 작품도 생기기 마련인데 자꾸 욕심이 난다. 작품마다 다른 매력이 발견된다. 내게 오는 작품들이 다 반갑다. <경이로운 소문>을 찍으면서는 내가 가진 게 많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부족함을 채워가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2021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