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페그는 영국인이다. 무엇보다도 족제비 벅처럼 정신나간 영웅 역할을 수도 없이 연기한 경험이 있다. 영국 시절의 그를 전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시체들의 황당한 새벽>(2004)와 <뜨거운 녀석들>(2007)을 한번 생각해보라. “내 캐릭터는 이를테면 일종의 안티-족제비다. 족제비다운 성품이 하나도 없는 족제비거든. 영웅적이고, 타고난 모험가에, 충성스럽고, 대담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정신이 나간 놈이다. 재주꾼 다져(<올리버 트위스트>의 꼬마 소매치기)와 커츠 대령(<지옥의 묵시록>에서 말론 브랜도의 캐릭터)에다가 인디아나 존스를 섞어놓은 듯한 캐릭터랄까.” 사이먼 페그는 “혼자 녹음실에 틀어박혀 목소리를 입히는 건 생각보다 훨씬 도전적인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문제는 캐릭터의 육체적인 움직임을 알맞게 목소리에 덧입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리와 몸을 막 움직이면서도 입은 마이크 주변에서 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른 배우들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좀 이상하기도 하고, 엄청나게 피곤하기도 하고. 5시간 동안 녹음하고 나서는 완전히 나가떨어졌다.”
지난해와 올해 사이먼 페그는 할리우드가 가장 총애하는 코미디 배우로 자리잡았다. 올해 무시무시한 흥행성적을 기록한 J. J. 에이브럼스의 <스타트렉: 더 비기닝>은 사이먼 페그라는 배우를 처음으로 할리우드 거대 스튜디오들의 가시권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사이먼 페그로서는 <스타트렉…>이 꽤나 초초한 경험이었던 모양이다. “그 영화에 뛰어드는 건 정말로 신경증적인 일이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야기를 새롭게 재발명해야 하는 영화였으니까 말이다. 어떤 영화든 결과를 예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예전 출연작 중에서는 촬영 중에는 정말 잘될 거라 기대가 컸으나 결과물은 꽝이었던 경우도 있다. 그러나 100% J. J. 에이브럼스를 믿고 뛰어들었다. 개봉 뒤 비평가들 역시 에이브럼스의 비전에 동의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좋다.”
<스타트렉…>과 <아이스 에이지3: 공룡시대>로 연속 홈런을 친 사이먼 페그 앞에는, 심지어 더 거대한 프로젝트가 하나 기다린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벨기에의 국보적인 만화를 원작으로 연출하는 <땡땡: 유니콘의 비밀>(Tintin: Secret of the Unicorn)이다. 물론 그가 땡땡을 연기하는 건 아니다. 땡땡은 제이미 벨이다. 사이먼 페그는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뜨거운 녀석들>에 함께 출연한 인생의 친구이자 공동 각본가 닉 프로스트와 함께 땅딸막한 쌍둥이 톰슨 형사를 연기할 예정이다. “스필버그를 2년 전에 처음 만났다. 같이 대본을 쓰자기에 세트를 방문했는데 그가 그러더라. 영화에도 출연하는 게 어떻겠냐고.”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는 스필버그와 대본 미팅을 한 뒤 복도로 나오자마자 감격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췄단다. “우리의 영원한 영웅이 직접 쓴 대본을 우리에게 읽어주다니!”
<땡땡: 유니콘의 비밀>을 보려면 2011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전에 사이먼 페그는 절친 닉 프로스트와 함께 대본을 쓴 코미디 <폴>(Paul)에 출연할 예정이다. 내용이 뭐냐고? 두 영국인 코믹북 기크(Geek)들이 코미콘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을 횡단한다는 내용이란다. 거 참. 한줄짜리 시놉시스만 보고도 미친 듯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