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쇼케이스는 어땠나. 김종도 대표는 김강우가 호스트라고 소개했지만, 조금 민망해하는 모습이던데.(12월10일, 김강우의 소속사 나무엑터스는 ‘김강우의 밤’ 행사를 열었다.) =좀 부담스러웠다. 창피하기도 했고. (웃음) 원래 그런 자리가 좀 난감하지 않나. 특히 배우들은 언제나 많은 대접만 받지, 다른 사람을 모시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대표님도 “너도 한번 나의 고통을 당해보라”고 하시더라. (웃음)
-쇼케이스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좋은 때 같다. <식객>이 장기흥행하고 있고, 게다가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까지. 조금은 얼떨떨하겠다. =내가 이런 상을 받아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흥행을 해보니까 흥행이 정말 힘들다는 걸 알겠더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정말 편하게 사는 인생은 아닌 것 같다. <식객>도 완성되기까지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느님이 나한테 너는 앞으로도 거저먹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웃음)
-출연한 영화가 흥행한 건 <실미도> 이후 처음 아닌가. =그렇지. 그런데 내 이름을 건 영화가 흥행했다는 면으로 보면 매우 빠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식객>을 시작할 때부터 부담이 많았다. 원작과 비교되는 것도 그랬고, 또 허영만 선생님의 <타짜>도 영화화돼서 잘되지 않았나. 그런 기대치를 견디는 게 꽤 힘들더라.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는 언론 때문에 힘들었다. 제작비가 없어서, 밥값이 없어서 영화를 못 찍고 있다는 루머들 때문에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던 것 같다.
-토리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도 남다르게 벅찬 감정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예전에 <씨네21>과 했던 첫 인터뷰를 보면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날리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고 했는데. =하하하. 처음에는 누구나 그러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런 것이 목표치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런데 막상 상을 받는 순간, 그냥 감사하다는 말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 조금은 시간이 더 지나봐야 이게 뭔지 알 것 같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이라….
-가족들은 뭐라던가. =굉장히 좋아하시지. 부모님은 또 자식이 상받아오는 걸 제일 좋아하시지 않나. 요즘 주변 친구분들에게 밥사느라 바쁘신 것 같더라. (웃음)
-그동안 촬영했으나 밀린 작품이 계속 등장한 한해였다. 곧 드라마 <비천무>도 방영된다고 하고, 이제 <가면>이 개봉한다. <가면>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보았나.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풍기는 영화였다. 그러면서도 인물 안에 있는 여린 내면을 건드리는 지점들이 좋았다. 또 양윤호 감독님이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촬영기법을 사용하셨는데, 매우 힘있는 영상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조경윤이란 남자에게 끌렸다. 사실 그동안 나는 정말 그렇지 않은데도, 많은 분들이 성실하고 선한 이미지로만 보는 게 있지 않았나. 조경윤이 그런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가면>은 잘 살던 남자가 파멸해가는 이야기다. 김강우란 배우가 이전에 연기한 캐릭터와는 조금은 다른 드라마를 지녔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연기한 남자들은 대부분 좌절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지 않나. =자기 의지대로 밀고가는 남자들이었지. 하지만 조경윤 같은 캐릭터가 진짜 사람인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의 운명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모습들이 있지 않나. 그건 존재하지 않는 힘이기도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의지 때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자기가 만든 덫에 빠지는 사람들이지. 조경윤도 그런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단순히 터프한 남자라기보다는 진짜 성숙한 남자를 보여주려는 욕심도 있었을 것 같다. <실미도>의 민호나 드라마 <세잎클로버>의 성우, <태풍태양>의 모기도 강한 면은 있었지만, 그들은 남자라기보다는 소년에 가까웠다. =그래서 <가면>이 나한테는 무척 중요한 작품이다. 언제까지 소년의 이미지에 머무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제는 더 성숙해야 할 테고, 또 <가면>이 좋은 결과를 내야 더 많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경의선>의 만수가 남자와 소년 사이의 경계에 선 남자가 아닐까. 연기하는 입장에서 만수에게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지하에 갇혀 산다. 1분도 늦어서는 안 되고, 매일 정신상태를 체크받아야 하고. 초반에 악몽을 꾸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도 일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꾸는 꿈처럼 보였다. =만수는 이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관사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랬고 기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일을 시작한 뒤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강박관념에 빠져 긴장된 삶을 살지 않나. 만수도 그 정도의 포지션일 것이다. 그때가 자신의 일을 가장 신선하게 느끼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기인 것 같다. 그런 모습들을 상상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답답할 수도 있지만 또 그런 분들 때문에 세상은 돌아가니까.
-한편으로는 김강우라는 배우도 잠자리에서 비슷한 꿈을 꾸곤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주된 이미지가 항상 그렇게 건실히 일하는 이미지니까. 배우로서 맞닥뜨릴 수 있는 위기의 순간들이 꿈에서 나타난 적은 없나. =처음 단역에서 시작했을 때는 다음날 촬영장 가기가 무서웠다. 모든 게 완벽하게 준비돼야 한다는 불안감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지. 사실 지금도 그렇다. 더이상 나를 찾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굉장히 크다. 그래도 그런 긴장과 강박이 나를 유지시켜준 것 같다.
-연기를 대하는 것 외에 실제 성격은 어떤가. 겉으로 보기에는 농담 잘하고 마냥 유쾌한 성격은 아닐 것 같다. =별로 재미없는 사람이다. (웃음) 무덤덤하고 흥분하지도 않고. 이번에 상받았을 때도 나보다 매니저가 훨씬 좋아하더라.
-그런 선입견 때문인지, <야수와 미녀>의 탁준하는 쉽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원래 그런 모습을 싫어한다. 왕자님 같고 억지로 멋있게 드러내야 하는 감정들은 잘 모르겠다.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정다감하게 사람에게 다가가는 걸 잘 못한다. 전형적인 대한민국 남자인거지. (웃음)
-그래도 <나는 달린다>의 무철을 연기하면서 그런 무뚝뚝하면서도 성실한 이미지로 호감을 얻었다. 독서광에 용접공인 무철은 사실 비현실적으로 보일 만큼 성실한 남자 아닌가.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이미지가 강하게 어필되지는 못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배우 김강우의 한계점을 만들었던 것 같고. =그때는 나를 그런 남자로 봐주는 게 정말 놀라웠다. 방송이란 게 정말 무섭구나 싶더라. 나는 절대 성실하거나 남에게 자상한 사람이 아니다. 사실 굉장히 이기적이고 예민하다. 솔직히 한때는 나를 그런 이미지로만 보는 게 싫었다. 또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듣다보니 일부러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려고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남자배우가 그런 이미지를 한번이라도 갖는다는 게 운처럼 느껴진다. 카리스마가 넘치거나, 재벌 2세 같은 캐릭터는 우리나라에서 남자배우라면 언젠가는 하게 되어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배우로 평생 살면서 그처럼 성실하고 착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 배우가 과연 몇이나 될까. (웃음)
-<야수와 미녀>와 드라마 <세잎클로버>는 왠지 흥행에 대한 조급함으로 선택한 게 아닐까 싶더라. =그런 조급함이 당연히 있었다. 나의 존재를 더 알려야겠는데 잘 안 되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하고 바보 같은 짓이 아니었나 싶다. 정말 그건 내가 드러내고 싶다고 드러내지는 게 아닌데 말이다.
-<식객>은 어떻게 생각했나. 흥행성을 염두에 둘 수는 있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의 이미지가 고착되는 것에 위험부담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조금은 그런 위험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하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을 믿어줄 거라 생각했거든. (웃음) 성찬이 가지고 있는 진실성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원작이 흥행적인 코드도 분명히 가지고 있었고.
-성찬이 바닥까지 갔다가 다시 치고 올라오는 인간형이어서 좋았다는 인터뷰를 봤다. 그런데 바닥까지 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대학 다니면서 <해안선>에 캐스팅되었고, <실미도>와 <나는 달린다>까지 연이어 맡게 되지 않았나. =그 말을 나에게 비유한 건 아니었다. 사실 나는 내가 바닥까지 친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바닥을 치고 나면 사람이 가장 순수해지고 치열해지는 것 같다. 성찬도 어떻게 보면 완벽하고 성실하지만, 초반에는 자기 입으로 “난 실수 같은 거 안 해!”라고 할 만큼 교만에 빠져 있다. 그런 인물은 자의든 타의든 결국 나락에 빠지게 되어 있다. 성찬도 결국에는 자기가 즐기면서 요리를 하다보니까 부활하지 않나. 연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도 과거에는 현장을 전쟁처럼 여겼지만, 이제는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정말 힘이 들고 긴장했지만, 내가 가장 즐겁고 성장할 수 있었던 곳은 현장 같더라.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