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안 작화감독은 난영과 제이의 캐릭터디자인에 두 인물의 성격과 성향이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난영에게서는 당차고 자기 주도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싶었다. 또 과학자로서 너디함을 의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제이는 그보다 더 주변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느낌에 가깝다. 만화에 볼 법한 꽃미남보다는 수수한 이미지에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면모를 부각하려 했다. 두 캐릭터 모두 일반적으로 미형이라고 지칭하는 디자인보다는 각각의 성향과 개성이 드러나는 방향으로 그려갔다.”
난영과 제이의 공간은 어떻게 다를까. 김성민 미술감독은 미래적인 난영의 집과 따뜻하고 온기 있는 제이의 집을 구분했다. “난영은 2050년대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디터 람스를 참고하여 집의 분위기를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그렸다. 반면 제이는 과거에 숨어 있다. 제이의 방의 사물들이 복잡하게 놓인 것도 그 속으로 숨고 싶은 제이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또 이 작품에 중요한 로파이 감성을 드러내기 위한 사물을 더했다. 하지만 난영의 책장에 있는 오래된 바이닐과 LP들이 둘의 중첩된 감정을 나타낸다.” 난영과 제이의 갈등이 높아지는 장면에서 난영의 집 창문은 굳게 잠긴다. “창문은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는 상징이다. 창문이 열리는 순간과 닫히는 순간의 심리적 요소를 둘러보는 것도 작품을 즐기는 재미가 될 것이다.”
난영과 제이의 목소리를 맡은 배우 김태리, 홍경은 정확한 애니메이팅을 위해 해당 장면을 실제로 연기하면서 촬영을 진행했다. 목소리를 구현하는 당사자들이 대사를 말할 때, 현실적인 표정 변화, 미세한 떨림, 디테일한 동작 등을 면밀하게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진행되는 작업 과정이 아닌 만큼, 난영과 제이의 자연스러운 액션을 고민했음을 알 수 있다. 스틸 속 난영과 제이가 맥주를 마신 뒤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장면은 윤재안 작화감독이 꼽은 가장 어려웠던 장면. “이 장면이 약 20초 분량이니 400프레임을 작업해야 했다. 시간이 워낙 오래 소요되기도 했고, 두 인물의 얼굴을 자세히 비추어 표정이나 눈빛을 더 섬세하게 담아내야 했다. 역동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장면은 상대적으로 휙휙 지나가기 때문에 티가 안 나는데, 오히려 정적인 장면은 디테일한 부분을 많이 신경 써야 한다.”
작품을 아우르는 종로 거리는 실제 세운상가과 그 일대를 많이 참고했다. “세운상가를 벽과 바닥, 두 키워드로 해석했을 때 이것들이 이어지는 이음새를 잘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전선이 어떻게 널브러져 있는지, 실외기 외형에 어떤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를 담아냈다. 상점 앞에 놓인 화분 하나도 세월감이 느껴지도록 만들고자 했다. 2050년대라고 해서 모든 게 급진적으로 변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아 있는 것. 여전히 그대로 간직된 것들. 그런 것에 집중했다.”(김성민 미술감독)
<이 별에 필요한>의 정점은 음악에 있다. 제이가 오랫동안 품어온 음악을 향한 사랑은, 이제 그의 마음의 새 주인인 난영을 위한 사랑과 함께 뒤섞인다. 그러니 제이의 노래는 난영을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보듬는 감정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의 음악을 총괄한 박성준 음악감독은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무드를 자주 떠올렸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신비로운데 슬프지만은 않고, 밝음과 어둠이 공존한다. 연결돼 있지만 따로 떨어진 연인의 아린 마음을 표현하기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 제이의 노래를 구현한 건 밴드 ‘웨이브 투 어스’의 보컬 김다니엘. “해외에서 반응이 엄청나게 뜨거운 만큼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기술적이거나 고음을 내지르는 보컬 스타일보다는 자기 색깔이 명확하고 감성과 음색이 잘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제이와 난영의 간절함이 극에 달하는 로 그런 지점을 명확하게 담아내고 싶었다. 정말 오랜 작업 기간 동안 나의 애정을 담았다.”
사운드트랙 중 <Life Goes On>은 김태리 배우가 노래한 곡. “영화에는 일부만 나오지만 전곡을 들어보면 홍경 배우와 듀엣한 것을 들을 수 있다. 녹음이란 게 가수도 최소 반나절을 녹음실에서 보내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이라 처음에는 걱정이 컸다. 그런데 모든 게 헛된 걱정이었다. 역시 사람은 감성과 목소리가 전부구나, 새삼스레 체감했다. (웃음) 무엇보다 작품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임해주어서 그런 태도가 노래에 그대로 담긴 듯하다. 5월30일 오후 6시에 발매되니 많이 들어주시면 좋겠다.”
아무도 모르는 디테일
김성민 미술감독 이와 난영이 싸운 뒤 집을 나가버리는 제이. 그때 화면은 난영을 비추지만 그 옆으로 살짝 켜졌다 꺼지는 현관 불빛이 보인다. 현실적인 공간적 풍경들을 넣었다.
박성준 음악감독 밴드 두더지 실사 촬영 때 피아노 자리에 있는 게 바로 나다. 영화에선 다른 인물로 그려졌지만 그 원형은 나라는 사실.
윤재안 작화감독 밴드 두더지의 포스터에서 제이보다 디아가 더 크게 나온 건 아직 제이가 서포트 포지션이기 때문. 이제 노래로 증명하면 투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