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견우는 그간 배우 차학연이 보여준 적 없던 얼굴을 꺼내 보이는 배역이다. 배우 본인도 흔쾌히 도전해보고 싶었을 것 같은데.
배우로 활동하며 접할 기회가 드문 캐릭터였다. 대본을 읽는 내내 무진, 희주와 함께 움직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무엇보다 이야기 속에, 또 세 인물 속에 담긴 견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처음엔 견우를 표현하기 위해 내가 갖지 못한 속성을 찾아야 했다. 견우는 감정에 따라 큰 고민 없이 직진하는 친구다. 반면 나는 견우보다 잔잔한 일상을 살고, 무얼 결정할 때 오랜 시간을 두고 숙고하는 타입이다. 견우만의 매력이 억지스럽지 않도록, 견우의 말과 행동이 오로지 한 인물의 유쾌한 성격으로 받아들여지게끔 노력을 기울였다.
- 자신과 다른 캐릭터를 체화하기 위해 중점을 두고 노력한 지점은.
혼자서 많은 리허설을 거쳤다. 견우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속도감이다. 평소 내 텐션과 말의 속도, 리듬감을 전부 높였다. 집에 삼각대와 카메라를 설치한 후 실제 유튜버처럼 말하는 시간도 거치고, 현장을 생중계하듯 휴대폰을 든 채 걸어다니며 말하는 연습도 거듭했다. 내면으로부터 배역을 체화하기보다는 견우다운 모습을 습관화하는 데 주력했다. 대사의 빠른 템포는 견우뿐만 아니라 무진과 희주에게도 중요했다. 세 캐릭터가 하나같이 말이 워낙 많다 보니(웃음) 이걸 일상의 속도로 뱉는 순간 장면의 장력이 늘어질 수밖에 없더라. 그럴수록 티키타카의 리듬감을 만드는 일이 필요했다. 와중에 노동법 관련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는 일이 관건이었다. 유독 어려웠던 대사가 있다. “안녕 장아찌들, <견짱 TV> 시작할게!” 이 대사가 어찌나 고민이던지! 유튜브 채널을 만든 적도 없고 유튜브 방송을 자주 보지도 않는 터라 불특정 다수에게 건네는 인사는 어떤 분위기로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래서 이 대사를 틈나는 대로 연습했다. (일동 웃음)
- ‘무진스’라 불리는 세 인물은 좋은 의미로 한패거리다. 작품 속에서 환상의 호흡을 보이는데 오늘 촬영 현장에서도 세 배우의 팀워크가 남달랐다. 동료 배우들과 어떤 시간을 보냈나.
일상과 신의 구분이 무의미한 현장이었다. 작품을 찍는 내내 언제나 무진, 희진, 견우로 살았다. 카메라 밖에서 원 없이 수다를 떨고 카메라 안에선 자유롭게 대사를 주고받았으니 말이다. (정)경호 형이 먼저 셋의 화학작용이 중요하니 리딩을 자주 해보자고 권유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드라마 중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가장 대사 합을 많이 맞춘 작품이 됐다.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자진해서 서로 만남을 가졌을 정도다.
- 작품을 미리 본 입장에서 꼭 언급하고 싶은 장면이 하나 있다. 정체를 숨기고 어딘가에 잠입했다가 정체가 발각돼 탈출하는 액션 시퀀스가 기가 막히다. 성룡 버금가게 온갖 지형지물을 활용해 탈출하는 와중에 웃음 포인트까지 챙기더라.
사실 그 장면이 그렇게 찍힐 줄 몰랐다. 대본엔 다섯줄 정도의 지문으로만 묘사됐거든. 그런데 전날 리허설을 위해 촬영장에 갔더니 대뜸 와이어를 차라는 것 아닌가. 달랑 다섯줄이 어느새 포위해오는 자들을 물리치고 건물 밖으로 탈출하는 거대한 액션 시퀀스가 된 것이다. 막상 찍으니 재밌고 통쾌했다. 공간의 모든 기물을 사용하는 액션을 언제 또 해보겠나. 그 장면이 견우의 캐릭터를 확립하는 순간이라 오래 기억에 남는다.
- 공개된 예고편을 보니 사건 해결을 위해 매번 다른 곳에 위장취업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여태껏 출연한 드라마 중 가장 다양한 얼굴을 갈아 끼웠다. 나는 공장 유니폼을 입어도, 의사 가운을 입어도 얼굴은 변하지 않으니 모조리 견우 같던데, 극 중 인물들이 속는 게 재밌다. 내가 외과계 중 어느 분과의 의사로 잠입하는지 기대해달라.
- 극화된 노동자들의 피해 사연을 매회 접하며 내 곁의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던가.
그래서 무진의 한 대사가 유독 마음에 남는다. 매번 견우가 한 사건이 끝날 때면 무진에게 “형님, 이제 귀신도 안 보이고 괜찮으신 거죠?”라는 질문을 건넨다. 무진은 늘 “그렇겠지”라고 답을 하는데, 무진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원혼을 보고 무진스는 늘 원혼의 여한을 풀어주기 위해 애쓴다. 무진이 계속 원혼을 만난다는 건, 직장 내 괴롭힘이나 산업재해와 같은 문제는 어느 시대에서든 끝나지 않고 발생한다는 뜻 아닐까. 결국 무진의 “그렇겠지”는 한 사건을 잘 마무리한 작중 세 인물과 비로소 성불한 억울한 피해자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다.
- <노무사 노무진>과 함께한 시간 동안 느낀 바가 있다면.
이 작품을 통해 나의 외연이 넓어졌다. 비단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서만은 아니다. 경호 형과 인아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 내가 해낼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의지하고픈 사람 곁에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누구의 도움 없이 견우를 연기했다면 막막했을 것 같다. 견우의 액션에 리액션하는 사람이 없으니 코미디 타이밍이 하나도 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나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며 도중에 멈춰 섰을지도 모른다. 사람 덕분에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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