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커버스타
조화의 몫을 지켜낸다는 것, <노무사 노무진> 배우 정경호 인터뷰
이자연 사진 오계옥 2025-05-20

그는 언제나 경쾌하고 진중하다. 얼핏 조합이 어려워 보이는 두 단어는 배우 정경호의 많은 것을 보여준다. 비트코인 투자로 인생 2막을 꿈꾸던 노무진은 오로지 갱생을 위해 노무사가 된다. 어렵게 시험에 합격했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가혹하다. 다달이 쌓여가는 사무실 월세에도 그는 조화에 물을 주고 잎사귀를 닦으며 다소 어이없는 희망을 찾는다. <노무사 노무진>은 노동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고발성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동시에 냉혹한 사회를 유머 코드로 재출력해내는 힘을 지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웃음을 손에 꼭 쥔 채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배우 정경호가 있다.

- <노무사 노무진> 촬영이 진행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고.

임순례 감독님이 <노무사 노무진>을 연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함께하고 싶었다. 감독님도 일찍이 만나뵈었다. 그게 드라마 <일타 스캔들> 촬영이 끝난 이후니까 실제 촬영에 돌입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린 거다. 제작을 결정하고 편성되는 과정이 의도치 않게 길어졌지만, 그동안 감독님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준비해왔다. 노무사라는 흔치 않은 소재에다 유령의 사연을 풀어준다는 스토리가 신선했다.

- 지금까지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면 직업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물론이고 마지막으로 촬영한 <일타 스캔들>도 로맨스 장르지만 결국 강사로서의 면모를 터득해서 비중 있게 연기해야 했다. 천재 음악가, 형사, 교도관 등 그 파이도 무척 크다.

돌이켜보니 그러네. 이게 정말 취향은 아닌데. (웃음) 나는 다양한 장르에 열려 있다. 특히 ‘사’자 붙은 직업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신원호 감독님과 의사 역을 처음 해보고, 유제원 감독님과 강사도 해보고, 이번 임순례 감독님을 만나 노무사도 해본다. 지금 한창 촬영 중인 김성윤 감독님과 공익 변호사가 된 판사 이야기를 그린다. 도대체 왜일까? (웃음) 나와 이런 전문직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걸까?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내게 그런 이미지가 있다는 게. 나는 사실 작품을 결정할 때 대본을 정독하는 유형은 아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편이어서 결정된 뒤에 대본을 차근차근 읽는다. 그러다 대사 난이도가 높아 당혹해하는 일도 종종 있다. (웃음)

- 보편적인 변호사물, 검사물은 정의감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노무진이 노무사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험난한 세상에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다.

<노무사 노무진>은 궁극적으로 인간 노무진의 성장드라마다. 노무사로서 노동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련의 과정은 사회적이고 가볍지만은 않다. 다만 모든 것을 피부로 경험하면서 무진은 비로소 진짜 노무사가 된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무진이 유령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평범한 노동자의 자식이자 노동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서 왜 혼령을 위로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

- 작품을 준비하면서 노무진의 어떤 점을 강조하고 싶었나. 따로 준비한 게 있다면.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무진을 조금 더 너디하게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여러 의견을 절충하면서 최종적으로 너무 못나 보이지 않게 다듬었다. 전문직이 지닌 이미지보다 사람 냄새 나는 무진이 되고자 했달까.

- 주제가 묵직한 만큼 <노무사 노무진>의 코믹 요소들은 작품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자연스러운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어떤 점을 신경 쓰나.

코미디 장면을 촬영할 때 너무 코미디에만 집중하려 하지 않는다. 배우들과 리허설을 하다보면 어떤 포인트가 재미있을 거란 판단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더더욱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막 웃겨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보다 그냥 그 장면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데 더 신경 쓴다. 또 그냥 그대로 흘려보내야 재미있는 장면들이 있다. 그럴 땐 편하게 녹아든다. <노무사 노무진>은 김보통·유승희 작가님 특유의 말장난과 재치, 유머가 담겨 있다. 작가님을 자주 만나면서 노무진의 말맛을 어떻게 살릴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 보통 드라마 촬영 여건상 매 회차 대본 리딩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하지만 정경호 배우가 나서서 노무사 사무실조, 유령조 등 배우들과 리딩할 시간을 마련했다고. 대본 리딩의 필요성과 의미를 잘 알기 때문인가.

이번 드라마는 무진-희주(설인아)-견우(차학연) 세 인물의 조화가 유지되지 않으면 끝까지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부러 동료들과 시간을 정해 대사를 맞추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대본을 읽으면서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놓는데 그것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드라마는 많은 사람이 모여 일궈낸 하나의 결실이기 때문에 균형을 잡아둬야 한다. 물론 배우 혼자 잘해도 작품이 잘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높은 확률로 드라마에는 조화의 미덕이 주요하게 작용한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100명의 사람이 모일 때 배우는 자신이 이뤄낼 수 있는 조화의 몫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나는 이 말을 지켜왔다.

- 경험에 의한 말처럼 들린다. 그 깨우침을 모르던 시절의 정경호도 있었을까.

너무 감사하게도, 또 너무 행운스럽게도 데뷔부터 멋지고 선한 사람들과 일을 해왔다. 현장에서 이 중요성을 첫 번째로 배웠던 것 같다.

- 얼마 전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에 특별출연하고, <노무사 노무진> 첫화에는 김대명 배우가 특별출연하기도 한다. 일명 ‘슬의생 세계관’이 정말 돈독해 보이는데.

많은 사람들이 미도와 파라솔이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할>에 특별출연했다고 알고 있지만 이는 오해다. 전공의들이 우리 세계관에 들어온 거지 우리가 특별출연한 것이 아니다. (웃음) 우리 모두 그렇게 믿고 있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