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호크 다운>은 대개의 할리우드 전쟁영화와 달리, 오로지 전투장면에 초점을 맞춘다. 전쟁에 개입한 미국의 정치적 올바름을 강변하는 목소리도 없고, 흔히 등장하는 전쟁 영웅 람보도 없고,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개인적인 사연도 없고, 곁다리로 얹어지는 러브 스토리도 없다.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20분 동안 관객들은 실제 전쟁현장에 와 있는 것처럼 숨소리 죽이고, 계속 꼬이면서 악화돼가는 군사작전에 사람들이 잔혹하게 죽어가거나 오로지 동료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이는 군인들의 모습을 볼 뿐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끔찍한 일을 겪고 살아남은 자로서의 허망함을 대리경험하며 잔혹한 전쟁의 이미지를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블랙 호크 다운>은 1993년 10월3일 실제 있었던 미군의 소말리아 모가디슈 전투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내전으로 인한 대학살과 기근으로 황폐화해가는 소말리아에 미군의 최정예 특수부대인 델타포스와 특공대원들이 유엔 평화유지작전을 위해 파견된다. 군벌인 독재자 아이디드는 기아에 허덕이는 소말리아인에게 제공되는 유엔의 구호식량을 빼앗으며 사람들을 마구 죽였고, 미군은 그를 제거하기 위해 아이디드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의 시내 한복판에 있는 건물에서 그의 각료 두 사람을 납치하기로 한다. 작전시간은 한 시간. 미군은 물통에 물도 채우지 않고, 야간투시경 같은 장비도 버려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블랙 호크 헬리콥터에 오른다.그러나 작전 40분만에 블랙 호크 수퍼 61이 로켓탄을 맞고 격추당하면서 작전은 아이디드 각료 체포에서 추락한 블랙 호크의 조종사 구출작전으로 바뀐다.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추락현장으로 달려가던 미군들은 끝없이 몰려드는 민병대와 아이디드 지지 시민들의 총탄에 하나둘씩 쓰러져가고, 고립된 미군들은 오직 살아남기 위해 총을 쏘며 구출을 기다린다. 적지에 갇혀 벌인 18시간의 사투로 미군 19명이 죽고, 소말리아인도 1000명이 죽거나 다쳤다.전투장면은 지상, 지붕, 수백미터 상공에서 맴도는 헬기, 그리고 비디오 모니터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지켜보며 작전을 지시하는 외곽의 작전통제실 등 다양한 각도에서 생생하게 보여진다. 육군 소장 윌리엄 개리슨 역의 샘 세퍼드를 비롯해 유격병 중사 맷 에버스먼 역의 조쉬 하트넷, 유격군 중령 대니 맥나잇 등 출연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도 탁월하다.베니스와 베를린 영화제 등에서 최우수 촬영상을 받은 슬라보미르 이지악 촬영감독의 영상과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한스 짐머의 음악도 점점 헤어날 길 없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영화의 팽팽한 긴장감을 극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블랙 호크 다운>은 기자 출신의 작가 마크 보우덴의 베스트셀러 <블랙 호크 다운: 현대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원작으로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하고, <글래디에이터> <한니발>을 연출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들었다. 2월1일 개봉.신복례 기자bo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