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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그늘 응시하는 영화,영화인들
2002-01-25

세계적인 교류 속도가 영화 만큼 빠른 매체도 없는 것 같다. 하나의 영화가 다른 나라로 팔려가 상품으로 유통되는 속도도 빠르지만, 각국의 화제작들이 전세계 영화 관계자와 비평가들에게 소개되고 평가받는 건 각종 국제영화제를 통해 거의 동시간적으로 이뤄진다. 한국에서도 매년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서 죽치고 앉아 있으면 최근 1년 사이 세계 영화의 경향을 두루 살필 수 있다.

영화가 다른 매체보다 비교적 진보적이라고 느껴지는 것도 나라간 교류속도가 빠른 데 기인하는 듯하다. 자국만의 고유한 편견과 차별의 관습을 옹호하는 영화라면, 당연히 국제적 교류의 장에 나오기 힘들다. 영화의 교류는 당연히 그 관습에 반대하고 싸우는 영화에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작용하기가 쉽다. 세계화가 이처럼 국경을 넘어 사람들의 소통을 돕고, 나아가 약자와 소수자를 억압하는 나라 마다의 메카니즘을 들춰내 거기에 대항할 지혜를 함께 모색할 수 있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은 것인가.그러나 근래에 얘기되는 세계화를 바라보는 각국 영화들의 시선은 마뜩치가 않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영국 켄 로치 감독의 <내비게이터>는 철도 민영화로 일자리를 잃게 된 철로조사원들의 애환을 담았고, 홍콩 프루트 챈의 <할리우드 홍콩>은 홍콩인들의`아메리칸 드림` 그늘을 짚고 있었다. 멕시코 알폰소 쿠아론의 <네 엄마도 마찬가지>에서는 멕시코의 세계화 반대 시위 장면이 의미깊게 스쳐지나간다. 영화제 기간에 제노바 서방8개국정상회담 반대시위를 담은 다큐멘타리를 상영하고 시위에 지지를 표하는 유럽 영화인들의 행사도 열렸다.한 외지는 이 영화제에 대해 “여러 나라의 자본이 모여 함께 만든 영화가 유달리 많고, 그 영화들이 세계화의 그늘을 응시한다”고 보도했다. 영화의, 영화인들의 세계화가 초국적 자본 주도의 세계화에 맞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지나친 걸까.한국 영화계는 곧 스크린쿼터 축소 및 한미투자협정 체결 반대시위에 나설 태세다. 한미투자협정도 크게 보면 초국적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한발 더 다가서려는 것이다. 미국 자본이 한국에서 장사하기 쉽게 만들어주자, 그러기 위해 경쟁의 룰을 미국식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 룰이 합당한지를 따지기 전에 룰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피해는 항상 약자들에게 전가되기 십상이다. 그점에서 한국 영화계의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에는 세계화에 대한 반성적 시각이 담겨 있다. 같은 맥락에서 유럽의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를 지지한다. 한국에서도 영화를 통한 다른 방식의 세계화가 진행되는 것 같아 반갑다.임범 기자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