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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에 두들겨맞은 `고양이`와 `나비`
2001-12-26

충무로의 올해 신조어 가운데 하나가 `그들만의 리그'이다. 2차대전 때 군대에 간 남자 선수들을 대신해 만들어진 여자 프로야구 리그를 다룬 미국 영화의 제목이다. 올 하반기에 충무로에서 탄생한 `그들만의 리그'의 구성원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놓고도 흥행에 죽을 쑨 일련의 영화들이다.

지난 10월부터 잇달아 개봉한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꽃섬> 등 5편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예산이 적고 검증된 스타가 없는 대신 연출력과 주제의식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문승욱 감독이 디지털 카메라에 잡아낸 우수에 찬 디스토피아 <나비>는 첫 주말에 3천명 들고 막을 내렸고, 처음 시도된 여자들의 성장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는 평단의 극찬도 아랑곳 없이 3만7천명에 그쳤다. <꽃섬>은 베니스영화제, 부산영화제, 도쿄필름엑스 등의 수상에도 불구하고 1만1천명, 장현수 감독의 페이소스 가득한 코미디 <라이방>은 2만명이 들고 말았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역시 언론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7만명에 만족해야 했다.

마침내 팬들이 나서서 <고양이를 부탁해> 는 인천에서 재개봉하게 됐고, <와이키키 브라더스> 는 명필름이 극장을 대관해 연장상영에 들어갔다. 또 서울 센트리식스 극장에서 12월1일부터 두주간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 등 4편을 한데 묶어 `와라나고'라는 이름을 붙여 상영하는 독특한 일까지 벌어졌다. `와라나고'는 내년 1월4일부터 아트선재센터로 옮겨 3주간 더 상영할 예정이다.

조폭 영화들의 잇따른 대박과 너무도 대조를 보였던 `그들만의 리그'는 올해 한국영화 활황에 가려진 우울한, 그러나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그늘이었다. 우리 사회와 삶의 구석구석을 비추는 진지하면서도 다양한 시선들이 이처럼 외면당하는 걸 두고 `시장의 논리'에 맡기라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국립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김소영 교수는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했지만, 극장더러 이윤 동기를 무시하라고 요구하기는 아무래도 무리다.

영화문화의 다양성과 저예산 영화의 활성화를 위해 여러차례 세미나가 열렸고, 영화진흥위원회는 이를 기초로 `저예산 예술영화' 지원책을 내년도 핵심사업의 하나로 논의하고 있다. 현재 추진중인 안은 전체 극장 좌석수 10만석의 1%에 해당하는 1천석의 공간을 확보해 최소한의 상영기회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극장에서 자원할 경우 1년중 5분의2를 `저예산 예술영화'를 튼다는 조건 아래 20% 좌석점유율에 해당하는 만큼 손실을 보전해주고, 이와 별도로 영진위가 직접 극장을 확보해 운영해 나가는 방안을 논의중이다. `저예산 예술영화'의 해당작품을 선정할 운영위원회를 별도로 만드는 것까지 포함해 소진성 예산을 9억여원으로 산정하고 있지만, 아직은 논의의 가닥이 통일되지 않은 상태다.

`그들만의 리그'는 올해 한국영화가 남겨 놓은 숙제다. 정책입안자들에게는 `그들만의 리그'의 전용 구장을 만드는 게 시급하겠지만, 관객들까지 함께 참여해 풀어야 할 과제는 `그들만의 리그'를 `메이저 리그'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마이너 리그'가 되도록 하는 일이다.

임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