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프랑스의 실존인물인 비도크(1775∼1875)는 추리소설이란 장르의 탄생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사람이다. 평민으로 태어나 도둑, 강도, 인신매매, 밀매, 위조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르던 그는 감옥을 안방처럼 들락거렸고, 탁월한 변장술로 50여 차례나 탈옥한 전설적인 `괴도'였다. 쫓기는 삶에 지친 그는 경찰의 끄나풀 노릇을 하다 1811년 `사설 경시청'을 창설한다. 그가 체험한 기이한 범죄들을 기록한 <회상록>(1829)은 이후 에드가 앨런 포, 코난 도일, 모리스 르블랑 등 많은 추리작가들에 영감의 원천을 제공했다.
영화 <비독>은 거울가면을 쓴 연쇄 살인범에 관한 이야기다. 사설탐정이지만 시민들로부터 경찰 못지 않은 신망을 얻고 있던 비도크(제라르 드 파르디유)는 잔인한 연쇄살인범 거울가면을 추적하다 한줌의 재로 발견된다. 비도크의 전기를 써오던 기자 에틴느 보아세(길레움 카네)는 비도크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실종 전 행적을 더듬어간다. 그 과정에서 그가 발견한 건 파리 뒷골목의 악취 풍기는 향락문화와 반인륜적인 사설클럽이었다.
영화는 비도크라는 전설적 인물의 후광에 크게 기대고 있지만, 그걸 작품 자체의 아우라로 소화해내는 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사회적 갈등과 혁명의 긴장감이 높아가던 1830년대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삼았지만, 그런 설정이 이야기의 전개에 아무 작용도 못하고 소도구 구실만 할 뿐이다. 추리 장르의 생명이라 할 `반전' 또한 어김없이 등장하지만, `의표'와 `정곡' 어디도 찌르지 못하고 어딘가 맥이 빠져있다. 피토프 감독, 28일 개봉.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