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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 상처받은 영혼 위로됐으면...
2001-09-07

송일곤(30) 감독의 이름은 일반인에게는 낮설다. 아직 발표된 작품이 단편영화밖에 없어 일반인들이 접할 기회가 드물었다. 4~5년 전에 송 감독이 폴란드에서 영화공부를 할 때 출연한 국제전화 광고, 한국에 있는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광고를 통해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이 더러 있을 뿐이다.

그는 한국 감독 가운데 국내외 영화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감독이 됐다. 99년 <소풍>으로 칸영화제 단편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더니 장편 데뷔작 <꽃섬>이 제58회 베니스국제영화제(8월29~9월8일) 경쟁부문인 `현재의 영화'에 초청됐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두개의 영화제를 통해 데뷔한 것이다. <소풍>에 주목하고서 <꽃섬>의 제작에 함께 참여한 프랑스 만달라영화사의 프러듀서 프란체스카 페더는 “신인 감독의 단편이 칸에서 상받고 장편 데뷔작이 베니스 경쟁부문에 오고 그걸 유럽의 유력한 배급사 와일드번치가 배급하는 일은 유럽에서도 드물다”고 말했다.

아직 한국에서도 한번도 시사회를 열지 않은 <꽃섬>이 5일(현지시각) 베니스의 살라그랑데 극장에서 공식 상영됐다. 성악가로 성공했지만 설암이 걸려 혀를 제거할 수밖에 없게 된 20대 여자, 긴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몸을 팔았다가 남편에게 쫓겨난 30대 주부, 낙태한 10대 여고생 등 세 여자가 우연히 만나 남해 인근의 `꽃섬'으로 가는 여행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었다. 표현방식은 사실적이지만, 송 감독의 말대로 “모험과 시련 끝에 목적한 바를 얻는 동화”적인 구성 안에 판타지에 가까운 디테일들이 표나지 않게 살짝 스며든다. `상처와 치유'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파고드는 모습이 요즘 젊은 감독 같지 않지만, 이건 그가 단편영화부터 일관되게 천착해온 테마다. 배우의 자연스런 호흡을 좇아 길게 찍고, 초첨을 흐리는 방법을 아꼈다가 필요하다 싶을 때만 쓰는 화면 연출도 실험적이라기보다 진지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 데뷔작은 송 감독의 작가주의 감독으로의 지향성과 함께 그 고집이 여간하지 않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공식상영에 앞서 이날 오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송 감독은 “나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좌절하지 않고, 조금씩 딛고 일어서기를 바란다”면서 “내 영화가 그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평소에 믿던 것, 머리속에 떠돌던 이미지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에 고민했다”면서 “한국에는 완고한 사실주의 영화의 전통이 강한데, 나는 관념과 추상이 영화의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꽃섬>이 장편 데뷔작일 정도로 송 감독의 지명도가 낮은 탓에 이날 공식상영이나 기자회견장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또 `현재의 영화' 부문에는 독일의 노장 베르너 헤어초크, 프랑스에서 막 부상하고 있는 로랑 캉테,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동생 주세페 베르톨루치 등 쟁쟁한 감독들이 참가하고 있다. 결과 예측이 힘들지만,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르베라는 <꽃섬> 제작사 `씨앤필름'의 주선으로 한국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영화에 대해 호의적인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완성도가 높고 여자의 얘기를 다루는 방식을 볼 때 매우 용감한 영화다. 관점이 개인적이면서도 깊다. 송 감독이 작가임을 확실히 느끼게 했다. 그는 아티스트이다.”

베니스/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