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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배 감독이 본 `토토로`
2001-07-20

영혼의 어루만짐에 오버랩된 내 유년의 아랫목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 온 우리 가족이 처음 세든 곳은 삼양동 산동네의 일본식으로 지은 오래된 가옥이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집 내부에 아주 깊은 화장실이 딸려있던 그 단독 주택은 귀신이 나올 것처럼 무서웠다. 해가 지면 겁에 질린 어머니마저 우리 자식들을 이끌고 산 중턱까지 내려와 직장을 알아보러 나가신 아버지를 기다리곤 했다. 당시 아버지는 그런 우리를 데리고 집에 올라와 마루에 있는 알전구를 밝히고 마당에서 등목을 하셨다. 그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편안히 잠이 들 수 있었다.

그 무서움이 전혀 다른 쪽에서 내 살갗 밑을 울린 것은 <이웃집 토토로>를 처음 보았을 때였다. 농촌의 낡은 단독 주택으로 이사가는 세바퀴 도라쿠(트럭)가 시골길 가로수 그림자의 그늘 맛을 보이며 화면을 통과하자 나의 울림은 벌써 다른 색채로 물들어버렸다. 이사간 집이 오래되어 귀신 나올 정도로 겁은 나지만 곧 어린 주인공 자매에게 신나는 놀이와 새 삶의 장소가 되는 이야기는 내 어린 날의 무섭던 기억마저 그들 편이 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래 저런 검뎅이 귀신, 나무 도깨비, 도토리 심고 가꾸기, 숲 속에서의 낮잠, 소낙비의 추억, 맘씨 착한 유령과의 접촉, 먼 곳으로의 비행…등등이 나에게도 있었어!'

<…토토로>는 이런 과거와의 공감각을 살갗 밑에서 현실로 솟아 나오게 만든다. 그 힘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빛을 발하는 요소이다. 무엇보다 순진무구 이상의 자연묘사가 살아 숨쉬고(애니메이션되고) 있기 때문이다. <…토토로>에는 햇빛 넘치던 들판의 작은 웅덩이에서 떠왔던 미지근한 올챙이 알들의 감촉이 그대로 살아난다. 소위 애니메이션 연출이라는 움직임의 세밀한 실감이 영화에 담겨있는 것이다. 가령 우리 앞에 `고양이 버스'가 도착한다면 어떻게 타고 내릴까라는 의심은 한 순간에 사라진다.

미야자키 감독은 1988년 이 작품을 만들면서 이전 작품들의 공상과학식 구성이나 이국적인 배경 전개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70년대 일본의 농촌과 풍물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이런 노력은 당시 동시 개봉된 공상과학물 <아끼라>와의 흥행 경쟁에서 일본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오늘날까지 미야자키 스타일의 신화를 굳건히 할 수 있었다.

비록 십여 년이 흘렀지만 <…토토로>를 국내 극장의 스크린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 기회에 이미 높은 산이 되어버린 그의 진지한 작업과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을 우리 것으로 옮겨 성찰해보는 수고도 꼭 곁들여 보았으면 한다. 자녀를 이끌어 `엄마 어렸을 적에'와 같은 전시회를 관람시키는 학부모들의 정성이라면 <…토토로>의 감동도 곧 우리 애니메이션으로 만나질 것이다.

그러나 과거 내 아버지의 용감함과는 달리 <…토토로>에 나오는 아빠처럼 아직 난 겁이 많아 걱정이다. 특히 `토토로' 인형을 졸라대는 아이와 대형 극장의 상가를 지나칠 때면.

이용배/계원조형예술대학 애니메이션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