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영화에 가장 자주 등장한 직업은 단연 `조폭'일 것이다.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등 `조폭'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코미디들이 순조롭게 흥행가도를 달린 데 이어 또 다른 조폭 코미디 <두사부일체>가 14일 개봉한다. 광고 필름을 만들어온 윤제균(32) 감독의 데뷔작.
`조폭 코미디'는 이제 `로맨틱 코미디'처럼 한 가지 공식을 형성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를테면 성품상 “단순 무식 과격”하다는 특성을 지닌 조폭을 산사나 학교 따위의 특정 상황 안에 밀어 넣어 `조폭적 행동양식'과 상식 세계를 충돌시켜 웃음을 생산해낸다는 전략이 그것이다. 똑같이 조폭을 다루더라도 그 세계의 비정함, 인간적 갈등과 배신 따위를 통해 삶의 아이러니를 탐구한 <초록 물고기>나 <파이란> 같은 영화와는 따라서 계보와 관객의 기대치가 다른 셈이다.
<두사부일체>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미 주변에서 “또 조폭 영화냐!”란 우려와 눈살을 많이 받은 편이다. 그런 시선을 충분히 의식한 탓인지 `조폭 코미디'란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억지스럽거나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많지 않다. 이미 많은 조폭 영화들이 극장가를 휩쓸고 지나간 현실을 의식해 영화 포스터의 카피도 아예 “그래, 나 또 조폭이다 왜!”라고 외치며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주먹 하나만 믿고 10년 동안 `조직 생활'을 해온 계두식(정준호)은 “두목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다”(두사부일체)란 구호를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온 작은 계파의 보스다. 두식은 명동을 접수한 공로로 조직의 수뇌부 회의에 처음 불려가 왕보스(김상중)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방계 계파의 보스들은 왕보스가 두식에게 명동을 넘겨주려 하자 발끈해 두식의 짧은 `가방 끈'을 걸고 넘어진다.
두식에게 명동을 맡기고 싶어도 주변의 견제가 심하자 왕보스는 두식에게 `어떻게든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하나 만들어 오라`는 지시를 내린다. 두목의 명령이라면 하늘같이 떠받드는 두식은 단란주점 두 개를 처분해 마련한 돈으로 상춘고등학교에 `기부입학' 형식으로 편입한다.
늙어 보이는 전학생 두식이 학교 안에서 목격한 것은 `집안'만 믿고 교사 앞에서 오만 방자하게 날뛰는 아이, 어설픈 `주먹' 하나 믿고 설치는 풋내기 불량학생, 교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서슴지 않는 극성 학부모, 그리고 무엇보다 땅에 떨어진 교사의 자존심이다. 여기서 한 꺼풀 더 들어가면 재단이사장의 온갖 비리가 악취를 풍긴다. 교장은 이사장 딸의 내신등급을 올리기 위해 성적조작을 교사에게 강요하고, 여교사에 대한 성추행까지 서슴지 않는다.
풋내기 불량학생 동팔에게 갖은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졸업'을 위해 참고 참던 두식은 동팔이 담임을 폭행하자 마침내 분노가 폭발한다.
재단 비리, 가난한 여학생 윤주(오승은)의 상황묘사 등 세부에서 날내가 더러 풍기고, 학력 미달을 웃음거리로 삼는 대목의 중복과 과잉은 약간 거슬리는 대목이다.
영화에는 시종 상춘고 주변을 맴돌며 학생들과 교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캠코더에 담는 `바바리맨'(고명환)이 고비마다 끼여든다. 겉보기엔 바바리를 멋지게 걸쳤지만, 그것말고는 다른 아무런 옷감도 걸치지 않은, 독특한 정신상태를 지낸 사내다. 감독의 분신인 듯한 이 사내를 통해 감독은 이 작품을 `제정신이 아닌 세상'을 관찰하는 한가지 방식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