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39) 감독의 <원더플 라이프>(1998)는 자기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의 배경은 죽은 뒤 모든 영혼들이 거쳐가야 하는 간이역인 ‘림보역’이다. 이곳에서 죽은 이들은 1주일 머물며 수요일까지 자기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한 장면만 떠올려야 한다. 림보역에서 근무하는 도우미 영혼들은 그 주의 마지막 날 이들이 떠올려낸 행복한 순간을 영화로 만들어 상영해준다. 그러면 죽은 이들은 그 행복했던 기억만을 안고 영원 속으로 사라진다. 다른 모든 나쁜 기억은 잊은 채.
죽음 이후의 세계가 영화의 설정처럼 이토록 동화 같고 아기자기하다면 죽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렇게 행복한 선택조차 어떤 이들에겐 쉽지가 않다. 와타나베 할아버지 같은 이가 그런 경우다. 대동아전쟁과 전후 일본사회를 살아오면서 현실에 안주하거나 만족하지 못했던 그는 어느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지 선뜻 선택하지 못한다. 자신의 삶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림보역은 이런 이들을 위해 자신의 평생이 녹화된 비디오 테이프를 제공한다.
림보 역에 남은 도우미들도 사실은 와타나베 할아버지처럼 선뜻 행복한 순간을 선택하지 못한 이들이다. 전쟁 중에 전사함으로써 삶의 쓰린 상처만 간직하고 이곳으로 와버린 모치즈키가 그런 경우다. 그는 와타나베의 추억을 돌이켜주려 애쓰다, 야릇하게 엉켜 있는 인연의 끈을 발견하며, “나의 삶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행복의 일부였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안개 낀 시골 분교 같은 아늑한 질감의 화면은 관객을 한껏 동화에 젖어들도록 만든다. 포르테로 연주할 곳이 한 곳도 없는 명상음악처럼 더딘 영화의 흐름은 삶을 되새김질하도록 등을 떠미는 듯하다. 98년 낭트 영화제 그랑프리. 8일 개봉.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