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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샴푸가 되고 싶어, < Shampoo >
복길(칼럼니스트) 2025-06-26

"Shampoo"(애프터스쿨, 2011)

이 곡을 만든 다이시댄스는 빅뱅의 <하루하루>를 통해 2000년대 후반, K팝의 특정 지대를 장악한 일본의 음악가다. 서정적인 피아노 멜로디에 분주한 하우스 리듬을 얹어 감정을 고조시키는 그의 작법은 <Shampoo>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곡의 멜로디는 특정한 코드를 반복해 감정을 일정한 고조 속에 머물게 하는데, 그것은 ‘울컥’ 쏟아지는 눈물이 아니라, 가슴이 저린 불안과 낯섦에 가깝다. 그리고 <Shampoo>는 그 위에 원태연의 가사를 얹어 음악이 품은 슬픔을 극대화한다. ‘Shampoo가 되고 싶어 그대의 머리카락에 나 흘러내리게’, ‘혹시 너 별, 별, 별 이유로 나를 슬프게 하면 너의 눈을 따갑게 할 거야.’ 시인의 특기인 ‘러브장’ 감성이 녹아든 가사는 이 곡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오히려 서정성을 한껏 과장해 맺혀 있던 슬픔을 피식거림으로 환기한다.

그러나 내가 이 노래를 씻김굿이라 여기는 데에는, ‘애프터스쿨’이라는 존재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의 팀명 ‘After School’은 언제나 ‘방과 후’의 여유보다는 학교를 완전히 떠난 이후의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소녀의 시기를 지나 도달하는 슬프고 화나고 미쳐버릴 것 같은 여자의 시간. 이미 어른이 된 소녀들이 유예된 채 머무는 찰나의 구간. 말 그대로 애프터, 스쿨. 나는 <Ah> <Diva> <Bang!>을 거치며 그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기에 <Shampoo> 앞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나에게 애프터스쿨은 곧 가희였다. 큰 키와 선명한 근육을 드러내며 체조 같은 안무를 이끌던 그는 한번도 본 적 없는 타입의 아이돌이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Shampoo가 되고 싶다’며 갸륵한 표정을 짓는다고? Shampoo란 자고로 모두가 그 향긋함만 취하기 위해 죄책감 없이 착취하는 물건이 아닌가? 가희가 어떤 여자인데 대체 Shampoo 따위가 되고 싶어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막상 노래를 들으면 그 위화감이 너무나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디바’가 되고자 격렬하게 움직이며 북을 치던 여자들이 갑자기 아련하게 ‘Shampoo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건 정말 위험한 그림이다. 그 관점에서 <Shampoo>의 가사를 다시 한번 읽어보자. 화자는 영원히 곁에 머무르기를 꿈꾸기보다 스스로 사라질 존재가 되기를 택한다. 자신의 형체가 거품이 아니라 향기로 남기를 바라면서. 그러니 이것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흔적으로 남기는 방식이다. ‘흘러 내리고’, ‘바람에 날려가’면서도 ‘너의 눈을 따갑게’ 만들고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향기를 남기겠다’는 선언. 이 이중성이 바로 곡을 지탱하는 핵심 정서다. 소멸을 감수하면서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기 위해, 감각의 다른 층위에 자신을 새기는 전략. 그러니 <Shampoo>의 화자, 가희는 결코 복종적인 존재가 아니며 <Shampoo>에서의 ‘씻김’은 정화가 아니라 승화에 가까운 것이다.

씻김굿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의식이다. 하지만 굿이 끝났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우리는 남아 있는 재를 견뎌야 한다. 애프터스쿨의 <Shampoo>는 바로 그것을 수용하는 노래다. 이 곡은 감정을 완전히 털어내기보다 남은 감정을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바꾼다. 만약 머리를 감는 행위를 일상의 씻김굿이라 할 수 있다면, 이 노래는 매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주술인 것이다.

k팝으로 한을 씻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어떤 노래로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는가. 어떤 이에게는 무대를 구르며 포효하는 퍼포먼스가, 또 어떤 이에게는 알 수 없는 언어를 저음으로 중얼거리는 랩이 마음을 달래는 방식일 것이다. 나는 <Shampoo>를 들으며 떠올린다. 각자의 불안과 분노를 해결하지 못한 채 내일로 넘어가는 사람들을. 마음에 불을 놓고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화려한 굿을 하는 대신, 물줄기가 졸졸 흐르는 샤워기에 이마를 댄 채 어제의 불안에 아파하고, 내일의 평안을 기대하는 작은 굿판 위의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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