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8일 오후 2시40분. 서부지법 앞 도로가 차단됐다. 경찰 버스들이 미로처럼 배치되어 있었고, 그 사이로 기자들과 시위대가 뒤엉켜 있었다. “대통령 석방!” 구호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이 김밥을 나눠주고, 아저씨들은 소주를 돌려 마셨다. 마치 동네 잔치 같은 분위기였다. “한잔하세요.기자님.”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에 나는 작은 종이컵을 받았다.
카메라를 어깨에 멘 채로 법원 건물을 올려다봤다.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앉아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실감나지 않았다. “여기서 찍으시면 안돼요.” 경찰관이 다가왔다. “기자분이세요?” “예술가입니다.” 서로 멋쩍게 웃었다. 이제 익숙해진 대답이었다.
서부지법 정문 앞 사람들은 두개의 무리로 갈라졌다. 좌측에는 “탄핵 무효” 피켓을 든 지지자들, 우측에는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시민들. “윤석열 석방!” “구속!” 서로의 구호가 교차하며 공명하기 시작 했다.
나는 도로 위 노란 ‘경계선’ 위에 트라이포드를 세웠다. 16mm 렌즈로 교환하자 주변 풍경들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기각! 영장 기각!” 누군가의 외침에 지지자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이내 가짜 뉴스임이 밝혀졌다. 긴 탄식이 거리의 환호를 대신했다.
저녁이 되자 단체 버스들이 도착했다. “Stop The Steal”을 외치는 젊은이들과 ‘애국시민’이라 적힌 조끼를 입은 중년들. 확성기를 통해 더 자극적인 구호들이 쏟아졌다. “차은경 어디 있어!” 지지자들의 외침이 차가운 밤공기를 찢었다. 주말 당직 근무 중 역사적 순간의 판단을 맡게 된 한 판사. 그녀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감독님, 저기 보세요.” 스태프가 내 팔을 잡았다. 사람들이 법원에서 나오는 공수처 차량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은박지를 두른 채 단체로 차량을 흔드는 모습들은 영화 <기생충>의 주인공 가족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아수라장 그 자체.
“위험해요! 뒤로 물러나세요!” 확성기에서 소리가 울려나갔지만 시위대는 멈추지 않았다. 경찰 방패 벽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넘어지고, 밟히고, 도망쳤다. 습기로 뷰파인더가 흐려졌지만 셔터만은 계속 눌렀다. 누군가가 “이건 폭동이야”라고 소리치자, 지지자들은 “우리는 국민 저항권이다”라고 다 같이 외쳤다.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영장 인용.” 속보가 터져나왔다. 새벽 3시, 시위대가 법원 출입문을 부수려 하자 경찰이 강제해산에 나섰다. 나는 카메라 대신 유튜브 라이브를 열었다. 옴진리교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감독이 사건 현장을 찍다가 자신도 사건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순간.
새벽 4시. 법원 앞이 다시 조용해졌다. 깨진 유리 조각들과 찢어진 현수막들만이 방금 전의 혼란을 증명하고 있었다. 분노에 일그러진 얼굴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눈빛들, 시위대가 MBC 기자들을 구타하며 중국인들을 색출하고 다녔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태극기들을 천천히 카메라에 담았다.
“기자신가요?” 후문 옆에서 울고 있던 누군가가 물었다. 자신은 폭력을 쓰던 시위대를 말리다 오히려 구타를 당했다고 했다. “감독님, 제 태극기라도 대신 꽂고 있으세요. 절대 카메라 들고 있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태극기를 나에게 건넨다. “괜찮습니다. 사실 저, 오늘 쉬는 날입니다.” 웃으며 말했다.
새벽 5시 정각. 알람이 울렸다. 순간 법원 건물에서 굉음이 울렸다. 경찰과 시위대가 다시 충돌하기 시작했다. 법원 복도를 놓고 서로 밀치고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카메라를 쥐고 후문으로 달렸다. 생각보다 몸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후문에 진입하며 한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분명히 겁에 질려 있었다. 아니다. 내가 겁에 질렸던 것일까? 흰 모자와 소화기로 무장한 그의 입에서 “윤석열 만세!”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갑자기 경찰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오늘 나는 무엇을 기록한 걸까. 역사의 한 장면인가, 아니면 그저 혼란스러운 하루의 단편들인가. 소화기 분말 가루가 화면을 새하얗게 뒤덮기 시작했다. 앵글 속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는 장면을 찍으며, 영화 의 장면이 떠올랐다.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계속 달리는 사람들.
저 멀리 불빛에 경찰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했던가. 카메라 화질을 낮추자 눈앞의 현실이 픽셀로 뭉개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불빛과 사람들이 하나의 점으로 축약되어 갔다.
그렇게 나의 ‘쉬는 날’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