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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CANNES 레터 - 2025 경쟁부문] <다이 마이 러브> 최초 리뷰
김혜리 2025-05-20

잡화점 직원이 묻는다. ”필요한 건 다 찾으셨나요?” 여자는 받아친다.“뭐, 인생에서?” 꺾이지 않는 직원은 유모차의 아기한테 찬사를 쏟아낸다.“어머 이렇게 예쁜 아이는 처음 봐요.” 점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여자가 일축한다. “댁은 생각은 하면서 말하는 거에요? 아니면 그냥 쉬지 않고 입을 나불나불하는 건가?”

이 가시돋힌 여자의 역설적인 이름은 그레이스. 배우는 이런 부류의 대사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제니퍼 로렌스다. 파트너 잭슨(로버트 패틴슨)과 그레이스는 자력으로 장만할 수 없는 넓은 집을 잭슨의 숙부가 물려주자 뉴욕에서 몬태나 외진 시골로 이사하고 곧 아기가 태어난다. 왕성하던 섹스는 드물어지고 작가지망생인 그레이스는 책상에 앉지 못한다. 발산할 곳을 찾지 못한 여자의 욕구불만은 관계를 잠식하고 말 그대로 집을 파괴해간다.

벌레의 웅웅거림과 아기 울음, 개 짖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가운데 히스테리가 불꽃놀이를 벌이는 <다이 마이 러브>는 보기 쉽지 않은 영화다. 그럼에도 이 불꽃놀이에는 놀라운 아름다움이 있다. <케빈에 대하여>,<너는 여기 없었다> 등에서 정신적 만성통증의 탁월한 연구자임을 보여준 린 램지 감독은 관객의 청각, 촉각, 시각을 난사하며 관객을 한 여자의 신경증 속으로 데려간다. <툴리>를 비롯해 산후우울증을 다룬 많은 영화들과 다르게 린 램지는 그레이스를 치유하려 들지 않는다. 건전한 정상성의 세계로 끌어내려하지 않는다. 벽지를 손톱으로 긁고 타일을 부수며 그 뒤쪽의 무엇을 잡아쥐려는 그레이스의 폭력적 몸부림을 변명하지 않는다.

<아메리칸 허슬>에서 행주질하며 헤드뱅하던 제니퍼 로렌스의 모습에 반했던 관객이라면 <다이 마이 러브>에 반색할 것이다. 한동안 스타덤에 의해 거세됐던 제니퍼 로렌스의 야성과 무시무시한 재능이 봉인해제된 이 영화는 <가여운 것>들이 엠마 스톤에게 그랬던 것처럼 로렌스의 연기편람으로 내년 오스카의 영광을 점치게 한다. <다이 마이 러브>의 억압은 나쁜 남편, 못된 시어머니보다 거대한 것으로부터 온다. 잭슨과 그의 어머니 팸은 결코 악역이 아니다. 외려 남편의 죽음으로 가족에 봉사하는 역할을 완료한 팸(시시 스페이섹)과 출산에 의해 그 길목에 접어든 그레이스가 마주보고 만들어내는 그림은 이 영화에 또다른 차원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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