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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성기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남부군>(1999)
<남부군>을 제작한 영화사가 대한극장 건너편에 있었는데, 배병수 매니저가 진실씨를 데리고 왔고, 그때 처음 봤다. 그늘지지 않고 상큼하고 발랄한, 그 시대에 보기 드문 캐릭터였다. 아무래도 암울한 시대를 거치다보니 그 당시 배우들은 어두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몸에 배어 있었는데, 최진실의 경우 빨치산을 돕는 간호사 역할을 맡았는데도 밝은 분위기가 났다. 우리와는 다르구나, 세대도 다르고 느낌도 새로운 새 시대의 배우가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 이미지가 나중에도 계속되더라.
최진실은 실제로도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 무엇보다도 잘 웃었다. 입을 다문 채 코맹맹이 소리로 ‘흥흥흥’ 웃었지. <남부군>의 박민자가 쉬운 역할은 아니었는데 긴장은 안 했던 것 같다. 정 감독님 얘기도 잘 따랐고. 처음에는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이미지라 솔직히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추모! 최진실] 새 시대의 배우의 등장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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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댓시네마 대표 채윤희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기획, <고스트 맘마>(1996) 홍보마케팅, <단적비연수>(2000) 홍보마케팅
웃는 모습이 참 예쁜 배우였다. 배우들과 일하다보면 속 썩을 일들이 생기는데, 최진실씨는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렇게 활짝 웃으며 다가오면 그전에 속상했던 마음들이 눈녹듯 사라지곤 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때도 그의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 모습 하나만으로 포스터를 만들기도 하고 그랬다.
동생 같고, 바로 옆집에 사는 친구 같은 이미지가 강했다. 그전까지는 여배우라고 하면 가까이하기 힘든 느낌이 컸다. 강수연이나 심혜진, 이미숙 같은 여배우들이 모두 그런 이미지였으니까. 근데 진실씨는 이웃 같은 느낌이 있었고 그가 하는 역할들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고. 그런 편안함이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았나 싶다.
[추모! 최진실] 타인까지 웃게 하는 환한 미소 -채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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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제현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단적비연수>(2000) 연출
<단적비연수>를 만들 당시 나는 신인감독, 최진실은 당대 최고 여배우였다. 그런데 캐스팅 제의를 했을 때 답이 너무 빨리 와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영화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굉장히 강한 배우였다. ‘배우의 꽃은 영화’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도전적인 얘기를 많이 했다. 편하게 대해라, 시키고 싶은 거 다 시켜라, 예쁜 분장 아니라도 상관없다, 고 했다. 한마디로 존경할 만한 배우였다.
최진실은 나와 동갑이었는데 워낙 연기 경험도 많고 현장 경험도 많아 사람들을 이끄는 포스나 영화에 임하는 자세가 남달랐다. 예를 들면 A급 배우들만 모아놓다 보니 스케줄 조율하기가 힘들었는데, 진실씨가 항상 먼저 나서서 “야, 나도 그날 광고 있어. 그거 안 하고 올 테니 너도 와라” 하며 중재 역할을 맡곤 했다. 신단으로 끌려가는 장면을 찍을 때는 갯벌에서 촬영하느라 시간이 촉박했는데,
[추모! 최진실] 이런 열정은 처음 봤다 -박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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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000 대표 이춘연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마요네즈>(1999) 제작
<마요네즈> 전에도 인연이 있었다. <남부군>이 제작 준비 중에 있을 때 매니저가 그를 영화계에 데려왔고, <남부군>에 캐스팅될 수 있도록 도와준 역할을 했다.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보니 같이 일하고 싶은 느낌이 있었고 그래서 <남부군>팀에 추천한 거였다. 동생인 최진영도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1990)에 출연하려 한다고 해서 그의 어머니까지 셋이 자주 만났고, 그래서 각별한 심정을 가지고 지냈다. <마요네즈>를 할 땐 이미 큰 배우가 되어 있었다. 캐스팅하게 된 계기는 김혜자 선생의 뜻이 컸다. ‘세상의 모든 엄마와 자식들이 이 영화를 보게 하자’는 의도로 기획한 영화였는데, 어머니 역할을 맡은 김혜자 선생이 자기 딸 역할을 진실이가 해줬음 좋겠다고 얘기하셔서 캐스팅하게 된 셈이다. 함께 작업하면서 조카 같
[추모! 최진실] 내 살붙이 같은 아이 -이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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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윤인호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마요네즈>(1999) 연출
첫인상. 깍듯했다. 다른 사람들이 사적으로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예의 바른 사람 있잖나. 지금 생각하면 마음을 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번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하니 그 속도가 엄청났다. 어느 순간부터 속얘기를 많이 하더라. “내겐 20대가 없었다”는 말을 많이 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이끌려 촬영현장에서 20대를 보낸 것에 지친 것 같았다. 오죽하면 “세트장 들어오는 시간이 제일 편하고 좋다”는 말을 했겠나.
진실씨는 어떤 배우가 될 것인지 많이 고민했었다. <마요네즈>도 기존의 이미지를 바꿔보고 싶은 생각에 선택한 작품이었는데, 그러다보니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난 연기에 소질이 없다”거나 “김혜자 선생님처럼 타고난 연기자였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민폐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많이 했다. 이런 문제로 눈물을 보인 적도 있었다. 그래서
[추모! 최진실] 스타보다 배우이고자 -윤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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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정국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편지>(1997) 연출
최진실은 처음부터 <편지>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출연한 <베이비 세일>(1997)이 잘 안 되는 바람에 제작사에서 반대를 했었지. 그런데 나는 자꾸 최진실 생각이 나더라. 함께 거론했던 다른 여배우들은 그냥 예쁘고 아름다웠는데, 최진실은 눈가가 촉촉히 젖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이미지가 멜로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적극 추천했다. 당시 박신양이 떠오르는 신인이었잖나. 그가 촬영할 때는 치열하게 몰입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던 반면 최진실은 무척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아미를 연기했다. 그래서 스탭들끼리 “역시 관록있는 배우”라고들 했다. 그리고 스탭들에게 정말 잘했다. 광릉수목원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찍을 때였나. 쉬는 시간에 스탭들 볼에 일일이 뽀뽀를 해주고 있더라. 그걸 보면서 톱스타인데 이런 면도 있네,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눈물 흘리는 장면을 하루
[추모! 최진실] 넘치고 넘치는 감수성 -이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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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한지승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고스트 맘마>(1996) 연출
최진실은 내가 상상했던 <고스트 맘마>의 여주인공 그 자체였다. 이건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겠는데, <고스트 맘마>를 준비하면서 우울해 보이는 연기자보다 슬프지만 희망의 여지도 남길 수 있는 여배우를 찾고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최진실만큼 딱 맞아떨어지는 배우는 없었기 때문에 당시 매니저였던 김정수씨를 통해 캐스팅했다.
워낙 내가 원했던 캐릭터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굳이 어떤 연기를 원한다고 주문한 적은 없었는데, 본인이 알아서 (연기를) 잘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대사나 리액션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아는 배우였다. 20대에 아이 있는 엄마 역할을 맡았는데도 나이의 한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열정적으로 연기를 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한번은 촬영을 한창 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진실과 연기 방향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나도
[추모! 최진실] 자기만의 대사나 리액션을 만들 줄 알더라 -한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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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장길수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1991) 연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 연출
최진실씨 인기가 한창 좋을 때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함께하게 됐다. 그때의 최진실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전자제품 광고가 연달아 히트하면서 사랑스러운 새댁 이미지를 강하게 갖고 있었다. 온갖 작품들의 제의가 밀려들었을 텐데 본인도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택한 셈이었다. 배우로서 하기 어려운 역할인 건 당연했다. 대사는 한국말이 거의 없이 외국어였고, 그것도 영어도 아닌 스웨덴어였다. 그리고 매우 비극적인, 불행한 여자 이야기였다. 그래도 본인은 ‘난 이런 역할 자신없어’가 아니라 ‘한번 도전해보겠다’라는 생각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 당시 석달간 스웨덴에 가서 살면서 스웨덴어를 열심히 배웠고, 한글로 발음을 옮겨 쓴 대사들을 열심히 외워서 잘했다. 결과적으로 연기가 좋았다는 평은
[추모! 최진실] 도전, 그리고 또 도전 -장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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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명세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연출
당시 최진실은 정말 신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상당히 끼가 많았구나 싶다. 보통 신인배우들은 웬만해서는 카메라 앞에서 많이 어려워하는 편인데 최진실한텐 그런 게 없었다. 선천적으로 카메라와 잘 어울렸던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일이 있었다. 현장에서 배우가 안 보이는 거다. 어디 갔나 봤더니 제 차 안에 숨어 있었다. 얼굴에 뭐가 났다며 촬영을 미루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박중훈과 최진실이 서로 싸우고 화해하는 기찻길 장면이었는데, 나는 그가 분장 안 한 얼굴로 찍길 원했고 최진실은 제 얼굴에 뭐가 났기 때문에 이 상태론 촬영이 안 된다는 거였다. 괜찮으니 신경쓰지 말라 그래도 죽어도 안 나오기에 조감독이 “괜찮아요 진실씨, 이미숙씨도 저번에 맨 얼굴로 촬영한 적 있어요” 그러니까 “이미숙 언니는 예쁘잖아요” 하면서 엉엉 울더라.
그 뒤로도 뭔가 같이 하려고 준비했었다.
[추모! 최진실] 선천적으로 카메라와 잘 어울렸던 사람 -이명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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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정지영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남부군>(1990) 연출
캐스팅할 때만 해도 완전히 신인이었지. MBC에서 단역으로 출연하고 있다고 했다. <남부군>의 박민자 역은 처음부터 신인을 뽑을 생각으로 사람을 찾았는데, 당시 매니저였던 배병수가 추천해서 처음 최진실을 만났다. 난 좋게 봤었다. 신인연기자들은 보통 감독을 만나면 자기가 어떻게 예쁘게 보일지만 신경쓰는데, 그건 어리석은 거다. 감독은 연기를 잘하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보는데 말이다. 그런데 최진실은 예쁘게 보이는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인터뷰를 할 때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묻는 말에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바로 캐스팅을 한 건 아니었다. 두달 정도 후보 사진을 사무실 벽에 붙여놓고 가만히 들여다보았었지. 그랬는데 사람들이 오고가며 한마디씩 하는 걸 들으니 최진실에 대한 관심이 제일 많은 것 같았다. 결국 최종적으로 회의를 해서 최진실로 결정했다. 처
[추모! 최진실] 보통 아이는 아니었다 -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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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강우석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미스터 맘마>(1992) 연출, 제작, <마누라 죽이기>(1994) 연출, 제작, <홀리데이 인 서울>(1997) 제작
진실이는, 내가 너무 오래전부터 봐왔어. <남부군>(1990)으로 데뷔했고,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첫 번째 히트작일 텐데 난 그때까지도 그가 연기자라기보다 연기를 하고 싶어하는 ‘지망생’ 정도로 본 거지. 저 체격에 귀엽기만 한 이미지를 갖고 배우가 될 것인가. <미스터 맘마>를 최민수랑 같이 할 당시엔 이미 둘 다 톱스타였는데 실제로 작업해보니까 되게 욕심도 많고, 자기가 연기 맛을 알면 큰 배우가 되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회식 자리할 때면 “진실아, 너 지금보다 조금만 더 연기에 욕심을 내봐라” 얘기하고 그랬다고. 영화쪽에 일단 집중하고, 정말 큰 배우가 된 다음에 TV랑 번갈아 해도 되지 않겠냐 그랬더니 자기도 그런 욕심이 난다는 거야.
그
[추모! 최진실] 남녀노소 모두가 사랑했지 -강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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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중훈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마누라 죽이기>(1994)
내가 최진실을 처음 본 기억은 <남부군> 때다. 고(故) 배병수 매니저가 영화 행사에 최진실을 데리고 다니면서 소개시켰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받은 솔직한 인상은, 체격도 왜소하고 당시 여배우가 가질 수 있는 전형적인 매력을 가진 인물은 아니란 거였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란 카피로 유명했던 전자제품 광고도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큰 인상을 받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준비할 때 제작사에서 최진실을 언급하기에 난 오히려 반대를 했다. 한 영화의 주연을 맡기엔 너무 가냘프고 귀엽기만 할 뿐 존재감이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할 때쯤엔 나보다 인기가 더 좋았다. (웃음)
여배우가 타고난 귀여움만으로 한 시대에 어필했다는 것은 그전까지 우리나라에선 없었던 일이다. 아름다움이라든가 연기력이라든
[추모! 최진실] 귀여움 하나로 한 시대를 사로잡다니 -박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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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방송인 15인 최진실을 추억하다
지난 10월2일 영화배우 최진실이 사망했다. 최근까지 그는 대중에게 <장밋빛 인생>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등 최근의 드라마 출연작들을 통해 ‘재기’에 성공하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탤런트로 여겨졌지만, 그에 앞서 우리는 그를 1990년대 한국영화 부흥기의 시작을 함께했던 영화배우로 기억한다. 1990년 <남부군>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최진실은 압도적인 미모나 카리스마 대신 특유의 귀여움과 친근함을 무기로 이전까지 한국영화에 없던 여배우의 매력을 선보였으며, 한국영화계의 기획영화 붐과 맞물려 톡톡 튀고 자기 주장이 분명한 신세대적인 여성 캐릭터의 원조급이 되었다. 감독 겸 제작자 강우석의 회고처럼 그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고, 배우 박중훈의 표현대로 “귀여움 그 하나만으로도 한 시대를 어필했던” 여배우였다. 그는 10년간 18편의 영화를 찍었고 <단적비연수>(2000) 이후 스크린으로
[추모! 최진실] 나의 사랑, 나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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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감독은 연극인의 미래를 꿈꾸는 10대였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의 반대를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무감동하게 러시아어학과에 들어갔다. 연극영화과가 아니라면 어떤 길이든 별반 차이가 없을 터였다. 졸업 뒤 3년 동안 해운회사를 다니던 그녀의 마음은 다시 들썩였다. 수능시험을 다시 볼 필요가 없다는 장점에 끌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지원했고 콘티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영상원에 합격했다. 그녀의 영화에서 오랫동안 다급할 것 없이 인간을 관찰한 자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경미 감독은 여고생의 동성애적 감정을 그린 단편 <거짓말>과 연애의 동상이몽을 간파한 <기억>, 배우 박해일을 캐스팅한 <오디션>을 차례로 내놓았고, 2004년작 <잘돼가? 무엇이든>은 장부조작 특근에 동원된 두 여직원의 미묘한 경쟁과 유대를 그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최고의 상을 받았다. <미쓰 홍당무>는 그녀의
[이경미] “양미숙은 삽질로 모두에게 행복한 선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