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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의 가장 뜨거운 스타는 안젤리나 졸리도 브래드 피트도 아니었다. <뉴문>과 <리틀 애쉬: 달리가 사랑한 그림>을 홍보하러 온 로버트 패틴슨이었다(<리틀 애쉬: 달리가 사랑한 그림>은 지난 10월 CGV 무비꼴라쥬 상영작으로 소개된 바 있다). 이 젊은 영국 배우를 향한 팬과 미디어의 열광은 지중해를 통째로 끓일 지경이었는데, 올해 칸영화제의 날씨가 예년보다 더웠다는 보도도 있긴 하다.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건 물론 없다. 10여분 남짓 주어진 단독 인터뷰를 위해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영화사 사무실로 갔더니 로버트 패틴슨이 불쑥 들어왔다. 이틀만 거닐어도 절로 선탠이 되는 지중해 해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얼굴을 보는 순간, 녹음기 대신 목을 들이밀 뻔했다.
-나 말고도 인터뷰할 기자들이 산처럼 모여서 기다리던데 정말 정신이 없겠다.
=엊그제 캐나다 밴쿠버에서 촬영을 끝내고 날아온 거다. 이제 곧 다시
[로버트 패틴슨] “이별장면이 잘못 나오면 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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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소녀들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11월20일 북미에서 개봉한 <트와일라잇>의 속편 <뉴문>이 무서운 기세로 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폭발적인 개봉 첫날 미드나잇 상영을 토대로 난공불락이라 여겼던 <다크 나이트>의 1일 최고 수익 기록을 탈환하더니, 역대 개봉 첫주 수익 1위까지 동시에 거머쥐기에 이르렀다. 하늘을 찌를 듯한 소녀들의 환호에 안 그래도 예민한 할리우드 관계자들이 바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기이한 소동극은 뭘 의미하는가. 캐서린 하드윅에게 메가폰을 물려받은 크리스 웨이츠, 아니 작가인 스테파니 메이어가 마법이라도 부린 걸까. 이토록 많은 여성 팬이 열광적으로 소설을 암기하고, 팬 카페를 만들고, 촬영장을 급습하고, 포크스를 성지순례하고, 영화적 완성도를 의심하는 일부 관객과 스크롤바를 내리다 지칠 만큼 끈질기게 논쟁하는 까닭은 대체 뭘까. 스테파니 메이어의 베스트셀러 ‘트와일라잇 사가’의 두 번째 편을 원작으로 한
<뉴문> 소녀시대 순정을 거머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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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란 평생 늘 비슷비슷한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스트라빈스키나 피카소처럼 영역이 은근히 넓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예술가는 둘 중 하나다. 그냥 편안하게 자기 영역에 안주해 자기 반복을 계속하거나, 어색하게 영역 주변을 맴돌다가 결국 자기 영역으로 돌아오거나. <순풍산부인과> 이후 김병욱은 늘 후자였다. 그는 늘 처음에는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소방서를 무대로 한 직장 드라마가 되고 싶었다. <똑바로 살아라>는 노무현 캐릭터를 이용해 연예계 이야기를 넣고 싶었다. <귀엽거나 미치거나>에서는 장르 패러디를 의도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위기의 주부들>식의 추리물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대부분 호랑이 가부장을 둔 대가족 코미디의 익숙한 형식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지 못하면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장르나 새로운 시청 환경에 대한 어떤 준비도
<지붕 뚫고 하이킥!> 신대륙 발견? 영토의 반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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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부쳐 일일시트콤은 더이상 못하겠다”는 김병욱 PD의 토로를 처음 들은 것은 <순풍산부인과> 때였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2009년 가을에도 그는 여전히 일일시트콤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수면 부족과 자학에 시달리는 초췌한 얼굴도, 쑥스러워하면서도 능수능란한 연출의 손길도 그대로다. 다만 김 PD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 당연히 어느 전작보다 마음에 든다고 담담히 확언한다. 40회까지는 초기 구상대로 달려왔지만 촬영 스케줄이 점점 목을 죄어오면서 “권투로 치면 클린치와 홀딩을 하며 허덕이고 있다”고 자평하는 김병욱 PD. 눈을 질끈 감고 그의 귀한 시간을 약탈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을 끝내고 나서 영화판 제작과 미니시리즈 기획이 있었던 걸로 안다.
=2007년 7월 <하이킥>을 끝내고 9월부터 30억원 예산의 영화를 준비했다. <하이킥>
[김병욱] “<지붕킥>은 1980년대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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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배우명)
이순재 (이순재)
떡볶이 가게에서 출발해 벌떡 일어선 F&B 회사 사장. 급식 납품하는 풍파고 김자옥 교감과 연인 사이다. 열정을 감당 못하는 체력 때문에 병치레와 부상이 잦다. 중증 방구쟁이로, 비서가 악취를 참다 못해 퇴사했다. 애인을 기쁘게 하는 말이라면 일단 뱉고 보는 통에 뒷수습이 힘들다. 일례로 1만 마리 종이학을 보름 만에 접느라 졸지에 109명의 고용을 창출, 개성공단 일손까지 동원했다.
김자옥 (김자옥) 풍파고 교감. 한옥 집주인으로 정음, 줄리엔, 광수, 인나에게 세를 주고 있다. 학생 젖꼭지를 꼬집는 버릇으로 ‘변태’로 불리지만 셀프 이미지는 “이슬만 먹고 사는 소녀” 혹은 “걸어 다니는 네잎 클로버”다. 이미지를 깨는 일을 극도로 혐오해 엉덩이로 이름 쓰는 벌칙, 딱밤 맞기 등을 당하면 깊은 원한을 품는다. 잘 때는 갈래머리, 여행시 대형 곰인형을 동반한다. 내숭이라면 질색인 순재의 딸 현경과 천적지간.
정보석 (정보석)
<지붕 뚫고 하이킥!> 주요 캐릭터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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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배를 잡고 웃다 눈물을 찔끔거리고, 하루는 애처로워 눈시울을 붉힌다. 꼬박꼬박 회당 두개의 시추에이션을 완결시키면서도 인물들의 운명에 연연하도록 관심을 붙들어놓는다. 오후 7시45분대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극본 이영철·이소정·조성희, 연출 김병욱·김영기·조찬주)이 우리를 정신 사납게 만들고 있다. 인기도 김병욱 PD의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 못지않다. 일일시청률 (11월5일 TNS미디어 집계)이 20% 고지에 올랐고 광고 판매율도 100%를 웃돈다는 소문이다. 120회로 예정된 시리즈가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는 이즈음 <씨네21>이 일산 드림센터 제5스튜디오의 ‘지붕 없는’ 순재네 집을 방문했다. 김병욱 시트콤을 꾸준히 지켜보아온 듀나의 글과 PD의 중간소감도 듣는다.
“시트콤이라며~!” “다섯살짜리 딸이 시트콤 보다가 울었어요.” “상식적인 선에서의 시트콤을 원합니다.” “왜 시트콤을 보면서 걱정을 해야 할까요?
<지붕 뚫고 하이킥!> 울다가 웃다가… 정신 사나워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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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백야행>과 영화 <백야행>을 비교해보니
<백야행> 소설과 (일본판) 드라마, 그리고 (한국판) 영화 중 가장 나은 작품은? 드라마와 영화가 ‘더 나쁜’ 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일 것은 확실하다. 재미있게도 <백야행> 드라마와 영화의 딜레마는 여타 소설을 극화한 경우와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소설을 드라마나 영화로 각색할 때는 글로 설명 가능했던 잔가지를 쳐내고 영상으로 효과적인 방식의 구성이 되도록 이야기를 뒤집어엎는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영화화를 결심하게 만들었던 촘촘한 이야기는 넝마가 되곤 한다. <백야행>은 그 반대의 경우. 소설에 없는 것을 드라마와 영화가 채워넣고자 한 데서 문제가 생겼다. 가장 결정적인 어떤 것을. 그들의 범죄행각은 행동을 그리기만 해서 이해될 수준의 것이 아니다. 원하는 대상이면 ‘누구라도’ 강간하고 살해하고도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유령처럼 존재하는 일의 어려움은 차치하고라도, 한평
<백야행>을 보는 네 가지 시선 [4]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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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징거리는 신세 한탄으로 가득찬 신파… 범죄묘사도 최악
박신우의 영화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 각색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관객이 무엇을 원작으로 보고 영화관에 들어오는지 알아야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 소설인가, 아니면 그 원작 소설을 각색한 일본 드라마인가. 그리고 내가 여기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원작 소설 독자의 입장이다.
우선 <백야행>의 소설이 어떤 작품인지 간단히 정리하겠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10여년에 걸친 두 범죄자의 긴 범죄행각과 그를 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담은 추리소설이다. 단지 여기서 작가는 하나의 형식적 실험을 하는데, 그것은 범죄자나 형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대신 챕터마다 그들과 엮이게 되는 피해자나 부수적인 인물들을 한명씩 선정한 뒤 그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소설이 거의 끝나는 후반부에야 표면에 떠오른다.
글쓰는 사람에겐 분명 매력적인 아이디어지만 <
<백야행>을 보는 네 가지 시선 [3] 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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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사회적 배경을 전부 삭제했다는 걸 감안해서 봐야
소설의 영화화는 대체로 욕을 먹게 되어 있다. 그 사실을 ‘디폴트’라 치고 넘어간다 하더라도, 영화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에 대한 혹평은 좀 놀라울 정도로 가혹해 보인다. 몇몇 리뷰를 읽어본 결과, 반대 의견은 대체로 두 가지로 수렴된다. 20여년에 걸친 시간을 오가며 일본사회의 변화상을 캐릭터와 밀접하게 연관시키는 방대한 원작의 힘을 살리지 못했다는 것, 주인공의 처연한 삶에서 치밀한 미스터리와 하드보일적 감각을 삭제한 채 ‘신파’ 멜로드라마로 바꿔버렸다는 것. 역설적으로 나는 영화 <백야행>의 그런 선택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보는 쪽이다. 아마도 똑같은 사실을 두고 이렇게 상반된 의견이 나오는 건 결국 원작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체적인 작품 세계와 감수성에 대한 호불호 때문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본다.
한국에서 인기를 누리는 수많은 일본 작가 중 히가시노 게이고에게는 단연 ‘남성팬’이 다
<백야행>을 보는 네 가지 시선 [2] 김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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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력 없는 미스터리, 팬시 상품같은 이미지만 연출
좋아하는 일본 미스터리를 꼽을 때, 나는 언제나 <백야행>을 첫머리에 놓는다. 그 냉랭한 감성이 좋고, 그 치열한 시대감각이 좋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히가시노 게이고를 거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할리우드에 견준다면 토니 스콧 정도 될까. 하나의 소재나 제재를 놓고,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고안하고 직선으로 달려간다. <용의자 X의 헌신>의 주인공 이시가미처럼, 문제를 풀어내는 가장 효율적이고 완전한 방법만을 생각한다. 그것은 엔지니어라는 전직에서 연유하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일 수도 있고, 애초에 그 이상은 능력 바깥이기 때문에 과감하게 장점만을 취하는 것일 수도 있다. 빠르고 정확한 스토리와 구성에만 전력투구. 그 덕에 비난도 종종 받는다. 동세대의 여성작가 미야베 미유키에 비하면 인물의 깊이와 심리묘사가 턱없이 떨어진다는 비판이다. 동의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물의 심리를 파고드는 힘이
<백야행>을 보는 네 가지 시선 [1] 김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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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을 보는 네 가지 시선- 원작소설·드라마판과는 어떻게 다른가
영화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이하 <백야행>)의 원작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일본에서는 드라마로 제작됐고, 영화로 만들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많아서일까. 지난 11월10일, 언론시사를 가진 <백야행>에 대한 평은 엇갈린다.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압축하려다 원작의 결을 잃어버렸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감성이 없어진 점을 매력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영화로 압축할 때,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는 이야기나 비교하지 않더라도 영화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맞서는 중이다. 어떤 의견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다만, 화제의 원작을 영화화한 <백야행>이 태생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백야행>을 둘러싼 대표적인 4가지 입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했다.
하얀 어둠속, 어떻게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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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CG는 없다. 탄탄한 시나리오는 있다. 우주는 전자파로 번뜩이는 대전(大戰)의 배경이 아니요, 자연스럽게 걷고 뛰는 것 외엔 그 어떤 특별한 액션도 없다. 격리된 인간의 내면을 설득력있게 조망하려는 패기만은 선연하다. <더 문>은 비범한 SF영화다. 주요 인물은 사실상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두명의 인물과 인공지능 컴퓨터 로봇뿐. 우주인의 개척정신을 배반하듯 인류가 발자국까지 남긴 지구의 위성 달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행성 하나는 우습게 날려버리는 트렌디한 SF영화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당황할 만하다. “70년대 초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의 고전 SF영화를 사랑한다”는 CF감독 출신의 신예 던컨 존스 감독은 말한다. “현대 SF영화와는 다른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오랜만에 발견한 야심가의 데뷔작 <더 문>을 소개한다.
머지않은 미래. 샘 벨(샘 록웰)은 달 기지 사랑의 유일한 거주자이자 승무원이다. 인공지능 컴퓨터 로봇 거티(목소리 연기 케빈 스페
SF를 철학적으로 개척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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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질문은 이거다. 로버트 저메키스가 드디어 언캐니 밸리를 극복할 것인가. 대답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 인간에 가깝지만 인간과 완벽하게 같지 않은 인공체에 사람들이 혐오감을 느낀다는 개념)는 <크리스마스 캐롤>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 물론 <크리스마스 캐롤>의 퍼포먼스 캡처 기술과 디지털 액터는 “부제를 <시체들의 밤>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CNN>)는 불평을 자아낸 <폴라 익스프레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 그러나 마담 투소의 박물관에서 짐 캐리와 콜린 퍼스의 밀랍인형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촬영한 듯한 <크리스마스 캐롤>의 캐릭터들은 여전히 어딘가 꺼림칙하다. 눈동자는 흐리거나 지나치게 밝고, 근육의 움직임은 어쩔 도리 없이 조금 경직되어 있고, 몸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가볍다. 한마디로 유령 같다.
캐릭터가 유령처럼 보인다면 성공한 것
그런데 잠깐.
[must see] <크리스마스 캐롤> 더 환상적으로, 확 소름끼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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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돌아왔다. 순수함과 강인함을 가졌지만 끔찍한 남자들과 잔혹한 세상에 희생돼야 했던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여신이 다시 강림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페넬로페 크루즈다. 알모도바르와의 네 번째 합작품 <브로큰 임브레이스>에서 크루즈는 복잡미묘한 연기를 펼쳤다. 물론 이번에도 스크린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그녀의 빛나는 외모와 그보다 더 눈부신 재능이다. 어린 나이에 영화계로 뛰어들어 수많은 영화를 통해 아름다운 외모와 이를 능가하는 능력을 발휘해온 크루즈의 삶은 신데렐라의 동화 같은 것만은 아니었다. 크루즈는 17년이라는 연기인생 동안 숱한 파랑을 거친 끝에 마침내 전성기를 개막했다. 새로운 지중해의 여신 페넬로페 크루즈의 삶을 되돌아본다.
솔직히 말하자. 페넬로페 크루즈가 진정한 배우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불과 3년 전 <귀향>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페넬로페 크루즈는 그저 얼굴 예쁘고 관능적인 육체를 소유한 섹시 스타로 보였다
페넬로페 크루즈, 그녀에게 항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