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를 대표하는 젊은 배우들을 모은 영화 <내일까지 5분전>에서 류시시는 쌍둥이 자매 루오란과 루메이를 연기한다. 류시시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해외 감독과의 협업이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님의 작품이라서 망설임 없이 출연했다. 고민이라고 하면 이전에 1인2역을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와 어떻게 다른 연기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었다.” 드라마 <보보경심2>에서도 1인2역을 해낸 바 있지만 “아예 다른 인물을 연기했던 그때와 달리 이번엔 같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인물을 연기해야 해서 마음이 힘들었다”고 한다. 쌍둥이지만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루오란과 루메이는 어떤 사고를 겪고 난 뒤부터 정체가 모호해진다. 류시시는 사고가 벌어진 뒤엔 “루오란도, 루메이도 아닌 제3의 인물일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역할을 소화했다. 류시시는 또 다른 오픈시네마 상영작 <수춘도>에도 출연했다. 류시시는 “지금 중국의 심각한 사회문제 중
데뷔 10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갑니다
-
일본영화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신작 <내일까지 5분전>은 일본 감독과 배우, 스탭들이 중국 제작사와의 협업으로 완성한 중국영화다. 상하이를 배경으로 아픈 과거를 간직한 시계수리공(미우라 하루마)과 일란성 쌍둥이 자매(중국 여배우 류시시가 1인2역을 연기한다)가 기묘한 사랑을 나눈다. 멜로영화 연출에 일가견을 보이던 유키사다 이사오 특유의 애틋함과 아련함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하나, 중국이라는 새로운 공간과 낯선 언어는 그의 영화세계에 얼마간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은 듯 보인다. <내일까지 5분전>의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위해 부산을 찾은 유키사다 이사오(왼쪽) 감독과 배우 미우라 하루마(오른쪽)에게 그들이 완성한 첫 중국영화에 대해 물었다.
-일본 감독과 배우로서 중국영화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유키사다 이사오_원래 일본에서 찍으려던 영화다. 그런데 최근 일본 영화계의 제작 환경상 이 작품을 영화로 구현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워 아이 니” “아이시떼루”
-
프랑스영화의 현재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베르트랑 보넬로를 빼놓을 수 없다. 그가 프랑스 패션계의 거장 이브 생로랑을 소재로 한 <생 로랑>을 만들었다. 생로랑 인생의 특별한 시기를 중심으로 그의 낮과 밤 그러니까 창조와 유흥의 나날들이 고혹적이면서도 탐미적으로 펼쳐진다. 그 고혹과 탐미의 창조 과정들을 보넬로에게서 들었다.
-<생 로랑>은 연출 제안을 받아 시작한 작품으로 알고 있다. 어떤 점에 흥미를 느꼈던 것인가.
=연출 제안을 받았을 당시에는 이야기도, 플롯도, 각본도, 책도,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생로랑이라는 인물밖에는. 그 점이 오히려 흥미로웠다. 나만의 개인적인 관점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전기적인 성격의 영화보다는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들, 비주얼, 로마네스크적인 캐릭터, 1970년대라는 광적이면서도 자유가 넘치는 시기의 분위기 혹은 당시 밤 문화의 디테일들, 그것들에서 어떤 가능성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거울 많은 방에 유약한 거인을 넣다
-
잘 알려진 대로 임권택 감독은 김훈의 소설 <화장>을 원작으로 동명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화장>은 화장품 회사의 중역 오 상무(안성기)가 투병 중인 아내(김호정)에게 헌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회사의 젊은 여직원 추은주(김규리)에게 몸과 마음이 끌려 갈등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힘든 거요, 만족을 못하는 거요.” 임권택 감독은 인터뷰 도중 종종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이 곧 그가 이번에도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다는 바로 그 뜻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작품이 완성된 지금, <화장>을 만들어온 과정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100편 넘게 해온 감독이기 때문에 기왕에 찍어왔던 영화들 바깥으로 빠져나와 다른 것으로 보이는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에는 했다. 원작 소설의 문장이 지닌 힘, 이런 걸 영상으로 담아내보자 하는 것이었다. 찍어가면서 이런 것들을 해결해야 했다. 완고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은 채 촬영을 시작
저런 것까지 앓아가며 사는구나, 보여주자는 거였다
-
-
홍콩의 거장 감독 허안화는 일부러 어려운 수수께끼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황금시대>는 여러모로 힘든 길을 택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허안화는 줄곧 홍콩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오며 홍콩 사람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국의 대표적인 천재 소설가 샤오홍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제작비도 문제였다.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라 투자자를 찾기 어려웠다.”
이게 끝이 아니다. 샤오홍은 이미 수차례 영화화된 인물이다. 하지만 허안화는 “또다시 샤오홍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이전 작품들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렇다면 어떤 다른 길을 찾은 걸까. “작가로서의 면모보다는 샤오홍의 사랑, 특히 샤오쥔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무엇보다 <황금시대>는 재연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결합이라는 생소한 화법이 돋보인다. 마디마다 샤오홍의 지인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인터뷰를 하듯 그녀가 겪은 일에 대해
수많은 주석 위에서 균형잡기
-
“아무도 없는 지구의 끝에서 단 두 사람만이 살고 있다는 이미지”가 가장 아름답고 기이하게 구현될 수 있는 장소로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은 홋카이도 유빙을 떠올렸다. 서늘한 풍광을 배경 삼은 그의 신작 <내 남자>에서 배우 아사노 다다노부(오른쪽)는 품어서는 안 될 상대를 사랑하다 파국을 맞는 준고를, 니카이도 후미(왼쪽)는 준고를 파멸로 이끄는 매혹적인 소녀 하나를 연기한다. <내 남자>에서 준고는 점점 피어나는 하나와는 정반대지점에 서 있다.
아사노 다다노부가 특유의 무표정으로 체화한 준고는 점점 더러워지고, 너덜너덜해지다 끝내는 버석버석 말라버린다. 이상한 말이지만, 아마도 ‘무표정’을 가장 뛰어난 표정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있다면 그건 아사노 다다노부일 것이다. 건조한 무표정으로 그는 하나와 동행한 15년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내 남자>는 2011년 부산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 지원을 받아 사쿠라바 가즈키의 원작 소설
무표정의 극점×마성의 생기
-
이탈리아 야생마가 왔다. 아시아 아르젠토가 <아리아>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전작 <이유 있는 반항> 이후 무려 10년 만의 장편 연출작이다. 이탈리아 호러영화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와 배우 다리아 니콜로디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9살부터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연기를 해온 배우이자 데뷔작 <스칼렛 디바>(2000), <이유 있는 반항>(2004), 신작 <아리아> 등 장편영화 3편을 만든 감독이다. 5년 전 부산을 찾았던 아버지 다리오 아르젠토처럼 그 역시 부산에 홀랑 빠졌다. “아버지로부터 열광적인 관객이 많은 영화제라는 얘길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이를 먹으면서 감동을 받는 날이 많은데 부산이 그런 날인 것 같다. 좀 피곤했다는 것만 빼고 말이다.”
-아버지 다리오 아르젠토가 5년 전 부산을 찾은 적 있다. 알고 있나.
=아버지와 함께 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러지 못했다.
어린 배우 연출, 아역 시절 만난 감독들보단 잘할 수 있다
-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의 전작 <고백>(2011)이 차가운 영화라면, 그의 신작 <갈증>은 부글부글 끓어올라 폭발하는 작품이다. 폭력이 난무하고 피가 낭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깜짝 놀랄 것까지야. 우리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을 통해 그가 만들어낸 지옥을 이미 맛본 바 있지 않나. 그 지옥에서 한 송이 꽃은 핀다는 사실도 보았다.
<갈증>은 전직 형사 후지시마(야쿠쇼 고지)가 실종된 딸 가나코(고마쓰 나나)의 행적을 좇다가 딸의 무시무시한 과거를 알게 되는 이야기다. 후카마치 아키오 작가의 소설 <끝없는 갈증>이 원작이다. 사건이 단순하게 진행되는 원작과 달리, 영화는 딸을 찾는 아버지의 현재와 가나코와 그의 남자친구의 3년 전 이야기가 재빠르게 교차하며 진행된다. 무엇보다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이 원작을 읽고 매료된 건 남자주인공 후지시마.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폭력밖에 없는 남자. ‘죽여버릴 거야’
지옥의 관찰자
-
2013년 세계 최고의 영화들이 언급되는 자리마다 빠지지 않던 영화 한편이 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라는 신예감독이 연출한 장편 데뷔작인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이다. 1965년 쿠데타로 집권한 인도네시아 군부정권이 공산주의자를 몰아낸다는 명분으로 벌인 대학살, 그 현장에 참여했던 가해자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요란하고도 섬뜩하게 그려낸 영화다. 가해자들은 지금까지도 세력을 잡고 있으며 심지어 과거 잔인한 학살 행위를 무용담 늘어놓듯이 자랑하며 스스로를 주인공 삼아 영화제작까지 한다. <액트 오브 킬링>이 대대적 관심을 얻는 가운데 오펜하이머는 발빠르게 후속작 <침묵의 시선>을 완성했고 2014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이번에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주요 인물이다. 대학살로 형을 잃은 ‘아디’라는 인물이 그의 형 ‘람리’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가해자들을 차례로 만나러 다닌다는 내용으로 <액트 오브 킬링>과는 동전
가해자가 승리한 세계에서 피해자가 던지는 질문
-
영화의 축제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귀한 게스트들이 많았고 <씨네21>은 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데뷔작 <액트 오브 킬링>으로 전세계 영화 평단을 깜짝 놀라게 한 뒤 두 번째 장편영화 <침묵의 시선>을 만들어 부산에 온 조슈아 오펜하이머, 다리오 아르젠토의 딸이며 <아리아>라는 자신의 연출작을 들고 온 감독이자 여배우 아시아 아르젠토, 프랑스의 동시대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명인 베르트랑 보넬로, <내일까지 5분전>의 주연이자 현재 일본의 가장 뜨거운 청춘스타 미우라 하루마, 그리고 102번째 영화 <화장>을 완성한 임권택. 그 밖에도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감독과 배우와의 소중한 대화들이 여기 가득하다. 당신에게 부산을 바친다.
영화를 찾는 사람들
-
※ 박지환 학생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어느 날 한국영상자료원 SNS에 한 소년의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어느 중학생이 해외 웹사이트를 뒤져가며 국내에 없는 한국 고전영화를 발굴해 정기적으로 자료원에 기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특한 소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소년의 기증작 편수가 무려 130여편이라는 겁니다. ‘보통 아닌 덕후로구나!’ 싶어 한국영상자료원 수집부에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소년이 “영화과에 진학할 생각인데 혹시라도 기사들이 불공평하게 가산점이 될까봐 우려한 까닭에 지금까진 사진촬영을 겸한 인터뷰를 거부했지만, 영화잡지인 <씨네21>이라면 사진촬영에 응할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는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다시 소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간단하게 몇 가지를 물었습니다. 소년은 중학생 때부터 자료를 기증해왔으며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한국영화를 찾는 일이 무척 즐겁기도 하고, 이 재미있고 예쁜 영화들을
언젠가 이 편지를 꺼내볼 그날을 위해
-
-연출자로서 캐릭터를 구축해가는 데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김운경 선생님이 캐릭터 구축의 달인이다. 내가 신경 쓴 건 오히려 공간이었다. 처음부터 대본에 ‘중정이 있는 연립’이라고 적혀 있었다. 인물들이 모여 살며 부대끼고 남의 인생에 끼어들고. 그러다 오해하고 또 서로를 더 많이 알게 되는 게 아닐까. 마당의 위력이라 생각한다. 옥상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공간이다.
-소매치기 유나를 비롯해 전직 건달, 꽃뱀 등 예사롭지 않은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김운경 선생님 댁에 가보면 <중국 거지의 문화사><도둑의 문화사> 같은 책이 엄청나게 많다. 연구를 많이 하시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나 냉대를 받던 인물이 과연 세상에 어떤 표정을 지을까라는 질문에서 유나 같은 인물을 만드신 것 같다. 유나는 기존의 가치에 도전하고 반항하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인물의 반항이 체제 안에서 안온하게 자기 이
코믹한 연기도 진지하게, 슬픈 장면도 눈물 없이
-
“감독님한테 제가 묻죠. 창만이는 왜 제 인생에 이렇게 참견을 하는 거죠? 지금 이 순간 창만이가 너무 보기 싫어요.”(김옥빈) “(유나의 첫사랑) 태식이가 그냥 꼴 보기 싫어요. 저한테 인사해도 (시큰둥하게) ‘어’라고 해버리고. 이렇게 얘기하다보니까 옥빈이나 저나 캐릭터에 너무 물든 것 같네요. 진짜 우리 사는 얘기라고 느끼고 있어서 그런가봐요.”(이희준) 그럴 만도 하다. 벌써 6개월째. 김옥빈과 이희준은 유나와 창만으로 살고 있다. 잠도 못 자가며 연일 촬영 중이지만 “<유나의 거리>를 통해 연기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많이 배우고 있다”는 그들의 말에서 드라마에 대한 진한 애정이 묻어난다.
김옥빈이 말하는 유나, 유나가 말하는 김옥빈
“일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타이밍이 좋았어요. 게다가 50부작이니 제가 계속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것도 좋을 것 같았고요. 유나는 세상에 끊임없이 반항하고 사람들을 밀어내는 인물이죠. 어렸을 때 엄마로
여장부 오지랖퍼와 다세대주택의 스파이더맨
-
“‘앞으로 나 이 양반과 술 어떻게 마시지?’ 퍼뜩 그 생각부터 들더라니까요. <유나의 거리>를 보는데 작가님이 사람 속마음을 훤히 다 꿰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동안 작가님과 편하게 술도 걸치고 놀았는데 얼마나 제 흠을 많이 알고 계시겠어요. 작가님 전작들도 봐왔지만 제가 <유나의 거리>에 유독 심하게 빠져들고 있어요. 작가님이 그간 연구해온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계신 것 같달까요. 캐릭터의 성격이나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신기할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내십니다.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대사가 완벽한 구어체라는 거예요. 그러니 연기자는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계에 들어가 작가의 의도대로만 연기하면 잘하는 연기자가 되는 겁니다. 제 트위터에도 썼지만 이번 드라마에 합류한 배우들을 보면 동업자로서 부럽기 그지없어요.
그러고 보니 작가님과의 인연도 꽤 되었네요. 그분 덕에 등산을 배워 2004년부터 같이 산에 오르곤 했어요. 같이 등산하고 내려와 그분이 산악회
김운경 작가는 시장통의 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