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갱스터, 누아르
박훈정 감독이 베니스의 러브콜을 받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베니스영화제는 2017년 박훈정 감독의 전작 <브이아이피>를 초청하려 했으나, 국내에서 상영되는 바람에 최초 상영 조건 때문에 초청을 무산시킬 수 밖에 없었다. 제77회 베니스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낙원의 밤>은 조직의 에이스였으나 타깃이 된 태구(엄태구)가 병으로 인해 삶의 끝자락에 선 재연(전여빈)과 제주도에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갱스터 누아르 영화다. 엘레나 폴라키 베니스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는 베니스영화제가 이전부터 박훈정 감독을 주목해왔음을 밝히며, 그가 각본을 쓴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부터 시작해, 연출작인 <신세계> <대호> <브이아이피>까지 거의 모든 필모그래피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지난 9월3일, “갱스터 누아르의 전통을 고수하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들어간 박훈정 월드에 대해 심층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면서 폴라키 프로그래머의 사회로 진행된 공식 기자회견 현장 얘기를 전한다. 코로나19로 베니스에 가지 못한 박훈정 감독은 화상으로 참여했다.
엘레나 폴라키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코로나19로 참석하지 못하고 화상으로 참여하는 기분이 어떤가.
=박훈정 일단 직접 참석 못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아쉽고 안타깝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베니스에 가지 못한 게 이번이 두 번째다. 그래서인지 더 아쉽다. <낙원의 밤>은 정말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영화이고 시나리오를 써놓은 지 오래됐다. 기회가 닿지 않다가 지난해 환경이 돼서 만들었다. 나는 사실 영화의 배경이 된 제주도를 굉장히 좋아한다.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기도 하지만 내륙과는 다른 분위기와 환경을 갖고 있다.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엘레나 폴라키 낙원 같은 제주도에서 갱스터들이 혈투를 벌이는데, 상상을 뒤집는 박 감독만의 선택이 돋보인다.
=박훈정 공간 배경으로만 설정한 게 아니라 제주도를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아름다운 섬에서 세상의 끝에 내몰려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낙원의 밤>에 나오는 주인공들에게 애정이 많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최대한 아름다운 곳에서 담아주고 싶었다. 관객이 영화를 재밌게 봤으면 좋겠고 한국의 아름다운 섬에 대해 많이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안에있는 캐릭터들의 감정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관객1 여성 캐릭터 재연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재연은 통상 필름누아르에서 그려지는 약한 여성 캐릭터가 아니다. 독립적이고 결정력 있는 캐릭터다.
=박훈정 일단 삶에 대한 집착이나 애착이 없는 캐릭터를 생각했다. 이런 말을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들은 겁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캐릭터가 전형적으로 그런 캐릭터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삶의 끝자락까지 밀려나 있는데, 그것에 대해 상당히 초연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엘레나 폴라키 주인공 두 사람이 벼랑 끝에 놓였지만, 두 사람을 잇는 끈끈함이 있다. 제주도의 맛있는 음식이다. 두 사람이 같이 맛집을 찾아다니는 장면이 굉장히 특이하고 신선했다.
=박훈정 제주도에 맛집이 많다. (웃음)
관객2 일본 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영향이 느껴졌다. 갱스터의 세계를 너무 잘 묘사해서 갱스터 친구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웃음) 또 한국에서는 코로나19로 어떤 타격을 받고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훈정 그런 분들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웃음) 일본 야쿠자 영화나 홍콩 누아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고등학생 시기를 지나 한창 영화를 공부할 때 이런 영화들이 유행했었다. 한국에서도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영화쪽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영화는 계속 제작되고, 촬영되고 있다.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주요 상영작 및 화제의 이슈는 씨네21 추석합본호 1274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