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은 독자들을 아련하고 부드러운 환상의 풍경으로 끌어들이는 소설이다. 인물들이 밤의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장면들이 자주 나와서일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 기차를 직접 탄 듯한 기분이 든다. 검푸른 밤의 차창을 비추는 자잘한 빛들. 건너편 승객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 혹은 뭔가 숨기고 있을 것만 같은 남자. 기차가 흔들리는 소리를 듣다 깜빡 잠들면 어느새 낯선 역에 도착하고, 플랫폼 너머로 호젓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낮인데도 문을 닫은 점포들과 폐가들이 줄지어 있는 그곳을 천천히 걷다 보면 잊고 있던 친구, 혹은 미워했던 이와 마주치는 것이다.
후반으로 가면서 이야기들은 또 다른 세계를 완성하는 그림이 된다. 밤과 낮이 붙어 있듯, 이 세계에서는 다하지 못한 인연들이 이어지는 반대편의 세계. 모리미 도미히코의 팬이라면, 서늘한 여름밤의 독서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이 야릇한 세계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토록 아련하고 부드러운 환상
그녀가 실종되었을 때는 물론 충격을 받았지만,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그녀라면 그럴 수도 있어’ 하고 남몰래 생각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리 친했어도 그녀는 늘 수수께끼 같은 인상을 풍기던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그녀의 중심에 어두운 밤이 있는 듯, 어딘지 불안하게 서 있는 모습이나 주변 사람에 대한 상냥함, 마음 속을 꿰뚫어보는 듯한 예리함도 모두 그 어둠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그녀가 밤 산책을 좋아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녀에게 이끌려 둘이서 긴 ‘밤의 모험’을 떠난 적이 몇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럴 때의 하세가와씨는 생기가 넘쳐 보였습니다.
당시의 일을 돌이켜보는 동안 제가 지금까지 그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애써 피해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쓰가루나카사토역에서 고지마군의 연락을 기다리며 하세가와씨가 사라진 구라마의 밤을 생각하다 보니, 그날 밤 그녀를 빨아들인 구멍이 지금도 여전히 그 장소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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