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됐는데, 영화를 본 밤섬해적단의 반응은 어떤가.
=(장)성건(보컬·베이스)이는 부끄럽다는 말을 반복했다. (웃음) ‘아수리언’ 권용만(드럼·작사)은 끝까지 <아수라> 홍보에 집중했고, 회기동 단편선은 새로 발매된 자신의 싱글앨범 <러브송>을 홍보했으며, 사진가 (박)정근이는 자신의 블로그 홍보에 여념이 없었다. (웃음) 이들 사이에서 감독으로서 진지함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망한 것 같다. 관객이 개봉하면 또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굉장히 사랑스럽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밤섬해적단을 카메라에 처음 담은 건 전작 <논픽션 다이어리>를 찍기 훨씬 전인 2011년이었다. 당시 밤섬해적단의 어떤 면모가 매력적이었나.
=당시 그들의 공연을 봤는데 노래 가사가 강렬했다. 비정규직, 청년실업, 홍대 두리반 투쟁,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등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비판하고 풍자한 곡들이었다. 소음에 가까운 그들의 노래가 복잡하고 시끄러운 한국 사회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근혜’의 10년이 보여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도 느꼈다. <공산당은 죽지 않아> <김정일 만세> 같은 곡들은 듣는 음악보다 ‘읽는’ 음악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저 친구들의 음악을 영화로 번역해주고 싶었다.
-영화의 전반부는 밤섬해적단을 소개하는 데 할애한다.
=전반부에서 크게 두 가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일단 성건과 용만, 두 친구의 화학작용을 그려내고 싶었다. 소년처럼 노는 진짜 모습 말이다. 또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의 투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당시 밤섬해적단과 함께 제주도에 내려가 해군기지 건설을 풍자하는 공연을 하고 그들을 카메라에 담은 것도 그래서다.
-밤섬해적단이 만든 곡 중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 있나.
=삽입된 모든 곡들을 추천하지만 그중에서 <똥과 오줌>을 좋아한다. 사실 386으로 대표되는 기성 세대가 청년 세대에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나약하다는 프레임을 만들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시키는 데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정근의 재판에서 용만은 “북한이 똥이라면 남한은 오줌”이라고 대답했다. 당신 앞에 놓여 있는 것이 똥과 오줌뿐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을 권리도 보장되어야 하지 않나. 한 가지 선택만을 강요했던 현실이 지난날 한국 사회의 폭력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난 6년간 주인공들과 함께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스스로 금기에 도전하는 높은 자존감들이었다. 자존감이 높기에 자신을 “가난뱅이”나 “멍청이”라고 당당하게 호명할 수 있었고, 이러한 단어들을 가지고 우리 사회의 모순과 사회적 금기들에 저항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청년 세대의 새로운 정치성이 박근혜 탄핵 이후 한국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결합될지 무척 궁금하다.
-후반부는 사진가 박정근의 트위터 국가보안법 사건(북한을 농담 소재로 삼기 위해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멘션을 풍자하는 글을 올렸다가 북한을 찬양, 고무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건. 대법원은 사진가 박정근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편집자)을 다루는 데 할애한다. 영화의 제작 기간이 길어진 것도 이 사건과 관련이 있나.
=그보다는 중간에 데뷔작 <논픽션 다이어리>도 만들었으니까. (박)정근이가 1심에서 유죄를 받으면서 2심은 분위기가 정말 심각했다. (박)정근이에게 “재판에서 웃으면 안 된다”는 얘기도 나왔을 정도니까.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웃긴 걸 왜 웃기다고 설명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변호사는 개인의 행동권이 이념의 잣대로 판단되어야 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왜 좋아하는 걸 했다는 이유로 억압받아야 하나. 트위터에서 하는 농담 또한 표현의 자유가 아닌가. 이 사건이 유죄판결을 받으면 이후에 벌어지는 유사 사건의 판결에 선례를 남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니 매우 심각하더라. 다행스럽게도 2심, 대법원 판결에서 모두 무죄가 나왔다.
-붉은색의 타이포, 과감한 내용의 텍스트, 현란한 모션 그래픽 등 화면을 가득 채우는 다양한 시각적 장치가 노래 가사의 이해를 돕는 데 사용되는데.
=노랫말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세련된 이미지로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그 이미지가 이 영화의 미장센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밤섬해적단의 노래를 잘 훔쳐왔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전작 <논픽션 다이어리>와 스타일이 많이 다르더라.
=이 영화를 만들면서 결심한 게 있다. 조금 더 새로운 영화를 만들자. 다음 영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 이 영화를 만드는 내내 자기검열이 심했는데 그걸 극복하기 위해 엄청 노력해야 했다.
-다음 작품은 뭔가.
=아직 자세한 내용을 밝히긴 어렵지만, <논픽션 다이어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등 전작이 인물에서 출발한 작품이라면 다음 영화는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어떤 영화?
밤섬해적단은 장성건과 권용만 두명으로 구성된 골 때리는 펑크 자립음악가다. 홍대 두리반 싸움, 해군기지 반대 운동이 한창이었던 제주 강정마을, FTA 반대 운동 등 투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사회문제를 풍자하는 노래를 불렀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의 전반부가 밤섬해적단을 그린 인물다큐멘터리라면, 후반부는 박정근의 트위터 국가보안법 사건을 다루며 이야기의 분위기를 전환한다. 놀이의 일환으로 북한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재판까지 가게 된 박정근 사건은 우리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 사건을 통해 국가가 개인의 행동권을 어떻게 침해하는지 날카롭게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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