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브래지어를 버리려다 도로 세탁기에 넣고 새 속옷을 사느니 술 사먹는다 흥얼거리던 마린의 삶에서 생활감이 사라진 건 소준과 급하게 결혼한 후부터다. 거실에 걸린 커다란 결혼사진만 치운다면 소준의 집에 마린의 흔적은 남지 않는다. 나쁜 술버릇, 속물 엄마, 아역배우였다가 잘 안 풀린 케이스로 가십거리가 되는 등 마린은 이런저런 치부를 단시간에 다 들켰는데도 소준은 자신에 관해 잘 말하지 않는다. 양치까지 함께하자 졸랐을 마린의 행동도 이런 불안에서 비롯했을 테다.
상대의 마음을 미리 넘겨짚곤 하는 마린이 내달린 자리, 남의 의사를 무시하고 갈등을 회피하는 소준이 물러선 자리가 우연히 겹칠 때가 있고, 육체적 끌림이 종종 로맨틱한 일치를 이루어내고 결혼으로 이어졌지만, 근본적인 커뮤니케이션 문제는 그대로다. 애초에 만남부터 그랬다. 정색을 하고 매번 지적해도 거듭 마린의 손이며 어깨를 잡고 당신에게 반했기 때문이라 둘러댔던, 소준은 거기 그 지점부터 돌아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