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농민들’의 감시 아래서 지겹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주인공들은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정열을 바칠 대상을 찾아낸다. 10대 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책과 여자아이. 그들은 도둑질까지 불사해가며 발자크와 로맹 롤랑, 뒤마의 책이라는 보물을 얻는다. 마침 동네 재봉사의 딸과 사랑에 빠진 한 소년은 그렇게 구한 책을 여자아이에게 읽어준다. 단지 예쁘기만 한 시골 처녀를 ‘세련되고 교양 있는 여자’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결말은? 바느질을 하던 여자아이는 대도시로 떠나버리고 소년은 사랑을 잃는다. 부르주아 애인에게 남긴 그녀의 마지막 말은, “발자크 때문에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 걸 깨달았다”였다.
대장정을 성공시킨 혁명의 상징 마오쩌둥 주석도, “당신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소. 사랑하는 여인은 매번 우리로 하여금 양식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게 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소”라는 말을 써대는 발자크에게 도저히 당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책(<골짜기의 백합>에서 인용). 이 사랑스러운 소설을 읽는 동안 유일하게 찝찝한 느낌을 갖게 되는 대목은, 심지어 이 시절에도 주인공들이 볼 수 있었던 북한영화 <꽃 파는 처녀>를 우리는 아직도 못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때다. 십대 소년의 눈에 “다시 볼 필요가 없는 시시한 북한의 신파극”으로 비치는 영화가 아직도 우리에게는 위험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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