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사회는 이미 많은 영화에서, 다양한 형태로 상상되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들과 다르게 <로봇 앤 프랭크>가 보여주는 차별적인 미덕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무리하게 관객에게 납득시키려 들지 않는 데 있다. 실제로 이 영화에는 신기한 눈요기용 미래 테크놀로지도, ‘날아다니는 자동차’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기계 ‘로봇’과 인간 프랭크의 관계에만 집중한다. 그래서인지 함께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고 티격태격하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과정은 여느 ‘버디무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들을 ‘버디’로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사건인 빈집털이나 경찰 추격전이 프랭크와 로봇의 느린 발걸음만큼 맥 빠지게 하는 것은 다소 아쉽다. 때문에 이들의(정확하게는 프랭크의) 감정은 감독이 의도한 만큼 서사 구조 안에서는 충분히 끌어올려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로봇 앤 프랭크>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내러티브로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 감정을 몇개의 훌륭한 숏들로 지탱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프랭크와 로봇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프랭크의 이야기를 받아내는 로봇의 표정없는 리버스숏들은 ‘쿨레쇼프 효과’를 증명해내기라도 하듯 프랭크의 감정을 자연스레 옮겨가 로봇의 검은 유리 헬멧 위에 고스란히 새겨낸다. 자꾸만 자신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프랭크에게 로봇은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라고 반복해서 ‘경고’하지만, 희미해져가는 프랭크의 기억과 리셋해야 하는 로봇의 메모리가 똑같은 무게로 다가오는 건 아마도 이러한 숏들이 만들어낸 힘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난 여전히 아름다운 리브 타일러와 수잔 서랜던의 모습도 이 영화를 보는 소소한 재미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좀더 그들의 연기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영화에 있었더라면 하는 마음에 또 아쉽기도 하다.
덧붙임. 이 영화의 한글자막이 지나친 친절처럼 느껴지는 것은 적지 않은 내 나이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