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초반부,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왕비와 신하 사이에 싹튼 ‘위험한 관계’이지만 <로얄 어페어>는 그들의 사랑에 집중하기보다 변화의 물결이 일렁이던 18세기 덴마크사회의 동요를 등장인물의 행동에 이식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이는 것 같다. 그 중심에는 실존했던 덴마크의 개혁가 요한이 있다. 왕의 환심을 산 요한은 왕을 구슬려 귀족들의 의회 앞에서 급진적인 법을 제안하도록 만든다. 천연두 접종, 보육원 설립, 소작농의 업무 시간을 절반으로 줄일 것.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정책들이 왕의 뒤편에 선 요한을 통해 끊임없이 쏟아져나온다. 흥미로운 건 군중의 반응이다. 자신들을 위한 법이 쏟아져나옴에도 변화를 불안하게 생각하는 그들은 요한을 지지하기는커녕 그를 왕을 조종하는 사악한 인물로, 덴마크에 혼란을 가져오는 이방인(요한 스트루엔시가 독일인이라는 이유로)으로 치부한다. 한편 요한의 정책으로 의회 예산이 줄어들자 위기를 느낀 귀족들은 요한의 약점을 찾고, 그게 바로 왕비와의 사랑이다. <로얄 어페어>의 감독 니콜라이 아르셀의 각본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군중, 사랑마저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하는 특권층의 모습을 차분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영화를 보며 경제 불황 속에 보수화되고 있는 21세기를 연상할 만큼 현실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요한을 중심으로 형성된 덴마크 왕가의 기묘한 ‘삼각관계’ 또한 <로얄 어페어>에 활력을 더한다. 소외된 한쪽을 무력하고 무책임한 존재로 묘사하는 보통의 치정극과 달리 왕비 캐롤라인과 요한 사이에 자리한 크리스티안 7세는 무척 복합적인 존재다. 자신의 편집증적인 기질을 유일하게 이해해준 요한에 대한 왕의 애착은 신하에 대한 총애를 넘어선다. 두 사람의 불륜을 알게 된 뒤에도 화를 내기보다 요한이 자신을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크리스티안의 흔들리는 모습이 이 영화의 결을 한층 섬세하게 만든다. ‘로얄 어페어’를 표방하는 이 영화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왕비와 요한의 사랑보다 왕과 요한 사이의 불안정한 유대관계가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더 흥미롭게 다가올 정도다. 이는 두 남자배우의 호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영화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미켈보에 폴스라르는 신인답지 않은 깊이로 유약한 왕의 모습을 표현해낼 줄 안다. <더 헌트>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매즈 미켈슨은 왕과 왕비 사이를 오가며, 궁과 궁 밖을 오가며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든 계몽주의자의 모습을 표현해 영화의 든든한 중심축이 되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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